

한 세계의 서로 다른 고독을 기록하는
다섯 개의 노래와 다섯 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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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 Season #2 설명회
EP #1. 잔여인간
네안의 주먹은 크고, 빠르고, 아프다. 김도현 경위는 저 미친 주정뱅이가 날리는 주먹을 세 번째로 피하는 중이었다. “적당히 하라고.” “우워어어어어!” 술독에 빠졌거나 감정이 격해진 네안은 종종 말 대신 소리를 지른다. 이 미친 네안은 둘 다였으니, 저렇게 나올 줄은 알았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이건 네안을 일종의 유인원으로 보는 편견을 강화한다. 네안의 사회적 인식을 한 단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놈은, 자신의 분에 못 이겨 손에 걸린 의자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리쳐 부쉈다. 아. 나우바에서 제일 좋아하는 의자였는데. 미친 네안이 다시 도현에게 주먹을 뻗어왔다. 이번엔 왼손. 도현은 양손을 들어 막는 척하다가 옆으로 슬쩍 빠지며 놈이 제풀에 넘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술에 취한 네안도 네안이다. 엄청난 취기에도 놈의 근육은 기어이 반응을 해냈다. 잠시 중심을 잃는 듯하더니 왼발을 강하게 딛고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 몸집에, 그 근육에 허리까지 써서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도 죽일 생각은 아닐 거다. 아마도. 팔을 들어 날아오는 주먹을 받아낸다. 뼈가 부러졌나? 괜찮겠지. 재빨리 눈을 굴려 피해상황을 스캔하자니, 어디 보자. 테이블 두 개, 의자 하나, 술잔들—은 깨져서 몇 개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코스터 몇 장. 이대로 계속 피하기만 하다간 도현의 소중한 단골집이 다 무너질 판이었다. 도현은 뒷발을 단단히 디뎠다. “적당히” 받아낸 주먹을 옆으로 흘리며 카운터를 쳤다. “하라고” 두 번째 주먹은 놈이 무의식적으로 올린 가드에 막혔다. “했지” 이번엔 옆구리를 노렸다. 빈틈을 잠시 살피다가, 마지막으로 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새끼야!” 마지막은 아끼던 의자의 몫이었다. 놈이 좀 멍해진 것 같다. 진정했나? 도현은 가쁜 숨을 내쉬며 놈을 관찰했다. ... “우워어어어어어어!!” 아닌가 보다. — 서이서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물론 그 녀석이 있었어도 싸움은 도현의 몫이었을 테다. 그래도 규범이란 게 있는데 이 인간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니까. “오와오우우애” 오? 이번엔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자, 지금 우는 건가? “뭐라고?” “온다고애누데” “온다고 했는데?” “아나스어” “안 왔어?” “흐어어어어엉” 도현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던 사장님을 쳐다봤다. “온 지 한 네 시간 됐어. 일행이 있다면서 테이블을 맡더라고. 처음에는 기분 좋아 보였는데, 술 시키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나중엔 아예 독한 술만 시키더라고.” 아. 실연의 아픔을 겪은 미친 자구나. 그러면 말은 되지. “안 올 수도 있지. 다음에 좋은 사람 만나면 되잖아.” 도현 딴에는 공감이랍시고 한 얘기인데, 주변 구경꾼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어쩌라는 건지. 그러면 지들이 진작 나서서 말리든가. “그렇다고 이렇게 이거 술집을 다 부수면 어떡해. 당신 이거 다 물어줘야 되는데 돈 많아?” 표정이 안 좋던 사람들이 이제 고개를 저으며 자기들끼리 웅성거린다. 참 내, 그럼 안 물어줄 건가? 도현은 구경꾼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네안을 쳐다봤다. 놈의 눈빛이 조금 뭐랄까, 또렷해져 있었다. “그딴 건 모르게꼬, 온다고 했딴 말이야!” 발음도 점점 정확해지네? 술이 깨고 있나 보다. 네안데르탈인은 독한 술에 훅 가지만, 알코올 분해도 빠르다. 난동을 부리다 갑자기 술이 깨버린 네안은, 한마디로 굉장히 머쓱한 인간이 된다. “온다고 했는데 안 왔다는 거지? 그래서 이렇게 술집을 다 부순 거고?” “그… 네 맞아요. 온다고 했으니까… 어… 기다리면… 오는 줄 알았죠….” “선생님, 이제 상황 대충 파악되시죠? 서로 같이 좀 가주셔야겠는데요.” 싸움 구경이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다시 각자의 대화로 돌아갔다. 네안에 대한 멸칭으로 간주할 만한 단어도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리지만, 도현은 무시했다. 다들 술 취한 인간들이니까. — “오, 마무리됐네?” 서이서가 드디어 나타났다. 도현의 파트너. 이럴 땐 절대 안 나타나는 뺀질이 파트너. “또 어디 숨어서 끝날 때까지 보고만 있었지? 술이라도 마셨나?” “무슨 소리세요 선배, 절 뭘로 보시고. 부랴부랴 왔는데 경위님이 잘 해결하신 거죠.” 언제까지나 이렇게 호호거리며 어물쩍 넘어갈 생각일까? “규범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확실해요? 난 좀 다르게 배웠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중앙 경찰학교에서 뭐 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거라곤 규범이랑 경례하는 법이 다인데 그걸 까먹었어?” “선배 혼자 그렇게 FM대로 구니까 매번 몸이 고생하는 거잖아요. 학교에선 맨날 규범 타령이었지만 밖에선 그 사이로 요령껏 안 다치는 법만 배웠다고요.” 아, 또 말장난하는 거였구나. 도현은 이런 데 한 박자 늦을 때가 많았다. 여기에 사장님까지 끼어들었다. “어유, 이서 좀 그만 잡아. 쟤도 오자마자 나한테 상황부터 물었어. 너 싸우는 동안 사람들 가까이 못 가게 잘 막고 있었고. 너는 맨날 너만 일하는 줄 아니?” 도현은 머쓱해서 툴툴거렸다. “됐고, 보고서는 네가 써.” “언제는 선배가 썼어요? 일단 들어가시죠.” 정리하고 철수하려는데 사장님이 서이서를 불러 세웠다. “이서! 계산하고 가야지!” 흠칫 놀란 이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사장님을 데리고 멀어지는 동안, 도현의 얼굴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찌푸려졌다. 이 자식이 심지어 현장까지 와놓고 합류는 않고 술을 마셨다고? 이건 정말 한소리 해야겠다. “야, 서이서 너…! 놀러 왔냐? 여기가 아무리 편해도 지금은 현장이잖아.” “선배, 맥주 딱 한 잔 마셨어요. 선배가 저 미친 네안 제압하는 데 정확히 3분 걸릴 거 뻔히 아는데 내가 뭐 하러 끼어드나? 거치적거리기만 하지. 여기까지 온 김에 목 좀 축인 거고. 선배가 일을 너무 깔끔하게 처리해서 내가 혼나는 게 말이 되나요?” 또 이상한 소릴 한다. 이서가 이렇게 이상한 말을 마구 쏟아내면 뇌가 피로하다. “그러니까 얼른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보고서나 쓰러 가시죠, 선배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말이 더 많다. 정말 맥주 한 잔만 마신 걸까? “알았어. 가자. 보고서 제목을 진짜 그걸로 쓸 건 아니지?” “네안이 네안을 줘팼으면 동족상잔이죠? 아니면 뭐 ‘젊은 네안의 슬픔’ 같은 건 마음에 드세요?” 도현은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저 네안은 젊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같다. 이서의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맥이 풀린다. 네안과의 격투보다 이쪽이 더 힘들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참는다. ‘서로 다른 인간종끼리 불필요한 폭력 및 신체 접촉을 자제하라’는 것도 규범에 나와 있었다. 좀 뉘앙스가 이상하긴 하다. 그럼 사피엔스끼리는 불필요한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일까? 하지만 그 규범을 만든 분들도 깊은 생각이 다 있었겠지. 굳이 더 생각하고 싶진 않다. “…인종 청소 당하고 싶은 거 아니면 이제 그만 입 다물고 가, 젊은 서이서 씨.” — 오늘은 피곤한 밤이다. 근육이 많다고 해서 힘쓰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미친 네안… 주취자의 주먹을 받아낸 도현의 손목이 맥박을 따라 지끈거렸다. 도현은 집에 도착하자 현관 센서등이 꺼지기도 전에 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거실 소파에 대충 구겨져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다. 바깥에도 더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시간이었다. 센서등이 꺼져 거실이 어두워지자 맥주캔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현은 그대로 소파에 파묻힌 채 맥주를 들이켰다. 캔 표면에 맺힌 이슬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꿀꺽. 꿀꺽. 첫 입에 반 캔은 마신 것 같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윗배에 자리를 잡는다. 도현은 속이 서서히 서늘해지는 감각을 음미했다. 달빛이 블라인드 사이를 제 집인 양 밀고 들어와 거실 벽면에 무심하게 사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빛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이 공간에 꽉 찬 적막이 무거웠다. 도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후…’ 길게 뱉어낸 숨결이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문득 세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이 이 세계의 구성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길을 잃은 관찰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관찰자가 도현의 몸에서 멀어져 옥상 위로 붕 떠오른다. 십여 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이 작은 아파트단지에만도 사람이 1천 명쯤 살고 있다. 누군가는 방송을 보고 있고, 누군가는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불이 이미 꺼진 집도 많다. 저 중에도 길을 잃은 영혼이 또 있을까? 천 명이면 한두 명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멀어진다. 도시가, 이 나라가, 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20억 명이 살고 있다고? 20억이라니, 생각하기 버거운 숫자다. 한 명한테 1달러씩만 받아도 20억 달러네. 부자가 되겠군. 이 숫자도 믿기지 않는데, 불과 100여 년 전에는 80억 명이 있었다니. 그건 정말 이상하고 아득하다. 상상조차 잘 안 된다. 발 디딜 틈은 있었을까? 사피엔스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턱대로 많아졌던 걸까? 길 가는 사람과 끝없이 어깨를 부딪히고 정신없이 사과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빽빽하던 세상에서, 겨우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70억 명이 넘게 증발했다고 한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건 대체 어떤 수준의 비극이었을까? 70억 개의 죽음. 도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때를 떠올렸다. 슬펐다. 그때의 인류는 35억 배나 슬펐던 걸까? 그 압도적인 비극의 무게를 이 행성이 어떻게 버텼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도현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신의 존재의 근원까지 파고들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100여 년 전에 우리 종은 세상에 없었다니.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멸종했었다고 한다. 그럼 그 긴 세월 동안 사피엔스 홀로 이 행성을 지켰던 걸까. 외로웠겠군. 그래서 그렇게 많아지기로 했던 걸까? 어쨌든 그들이 우리 종을 되살려내기로 결정한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내 집 소파에 누워 있다. 욱신. 손목의 통증이 도현을 찌르자 부유하던 영혼이 갑자기 몸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왔다.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잡아 꾹 눌렀다. 통증이 잠깐 퍼졌다가 가라앉는다. 4만 년 만에 깨어나서 한 일이, 4만 년 만에 깨어난 형제의 술주정을 몸으로 받아준 거라니. 도현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멸종했다 돌아온 주제에 엄살은 사치지. 손목은 괜찮을 거다. 맥주 캔은 어느새 비었다.
EP #2. Flawless (ghost)
울음을 멈추어라. 창공을 가르는 매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심해의 거대한 고래는 묵묵히 자신만의 항로를 헤엄쳐 나아갈 뿐이다. 이제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역병 따위가 아니니, 별빛마저 집어삼킨 눈먼 어둠과도 같은 절망이다.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콧수염 끝을 매만지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겁에 질린 인간들이었다. 그는 의장석으로 곧장 다가가 늙은 사무총장의 굽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착석하고 웅성임이 잦아들자, 비로소 의장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번에 인류는 정말로 멸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실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한때는 이백 개가 넘는 국가의 대표들이 빼곡히 앉아 있던 거대한 UN 본회의장을 폐쇄하고, 이제 그 관료들 중 십수 명만이 비좁은 임시 회의실에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처지였다. 평소라면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고상한 명분을 앞세워 영웅을 자처할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들 역시 폭풍 앞에 노를 거둔 항해자들처럼 잠잠했다. 다만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그들 각자의 영혼을 매만질 뿐이었다. 이 자리가 일상적인 탁상공론의 연장선이 아님을, 의장의 저 말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지를 모두가 확실하게—물론 이 절망적인 공기 속에서도 홀로 우아한 초연함을 잃지 않은 자가 있었지만—알고 있었다. 의장의 메마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멸종을 막기 위해, 문자 그대로 전대미문의 노력과 집중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비책 역시 이미 마련 중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커빙턴의 멋들어진 콧수염이 살짝 들썩였다. 전대미문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은, 전대미문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예비책 따위에 나눠줄 자원은 없다는 말이다. 인류는 고작 반년 사이 두 번의 전염병에 절반을 잃었고, 나머지 절반은 절망에 잠식된 패배주의자가 되었다. 예비책이란 다름 아닌 그들의 나약한 타협이다. “멸종을 앞둔 마당에 다른 어떤 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그래도 세계 각지에서 별의별 단체와 개인들이 메일을 퍼부어대고 있습니다. 다들 멸종에 대비해야 한다며 하잘것없는 갖가지…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죠. 그런 걸 의견이라고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커빙턴은 늘 그렇듯이 우아한 억양으로 연설하듯 말했다. 의장이 생기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예비책일세. 인류가 멸종한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뭘 준비할 것인지를 말하는 거라네.” 그는 느릿하고 차분한 말투로 얘기했지만, 말을 시작하기 직전에 짧은 한숨을 쉰 것 같았다. 커빙턴은 이 노인이 자신을 훈계하듯 대하자 은근한 부아가 치밀었다.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앞에서 어떤 단어를 골라야 이 늙은이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커빙턴은 보좌관인 클레어 양이 출력해준 이메일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보내온 메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십니까? 어디 볼까요. 유적들에 대한 보존 처리. 기록물 보관소의 증축. 인간 DNA 보존. 아, 이건 예술품의 이관. 훌륭하군요.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게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류가 정말로 멸종한다면 결국 다 의미 없는 짓입니다. 그런 곳에 인력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런 알량한 구색이나 맞춰놓고 ‘인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며 기만을 저지를 셈입니까?” 바로 지금이다.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결정적인 일격을 날렸다. “창공을 가르는 매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지, 지나간 과거를 부둥켜안고 주저앉아 울어선 안 됩니다.” 과장 없이 절제되고 우아한 시적 은유, 거기에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 단호한 비전 제시. 실로 완벽했다. 커빙턴은 그의 자랑스러운 콧수염을 매만지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오늘의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점이 아쉬웠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깡마른 사내가 들어왔다. 의장 쪽 사람이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는 무슨 TF 팀장 어쩌고였다. 의장이 예비책 운운하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바로 그 팀이었다. 죽어가는 행성의 묘비를 세우자고 산 자들의 자원을 낭비하는 꼴이라니. 커빙턴은 노골적인 조소를 드러내며,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당히 자상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쪽은, 그러니까…” “쇼, 시어도어 쇼입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머리는 지저분했으며, 셔츠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그는 커빙턴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의장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의장이 고개를 들어 팀장을 바라보았다. “쇼 팀장, 무슨 일이지?” 시어도어는 천천히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며칠 밤을 새운 듯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예비책의 최종안을 가져왔습니다.” - - “아무래도 좆됐다.” 마크 와트니는 혼자 좆된 거였다. 물론 그에겐 안된 일이지만, 적어도 그때는 지구에 인류가 건재했고 심지어 화성에도 한 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이대로라면 지구에도, 화성에도, 그 어디에도 한 명도 남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이 멸종의 흐름을 멈추려고, 되돌리려고, 또 늦추려고 수많은 두뇌와 손발이 역사상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어도어의 팀으로 말하자면, 어떤 면에서는 다소 패배주의적인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인류가 정말로 멸망한다면, 멸망하기 전에 뭘 해둬야 하지? 그게 시어도어가 대답해야 할 문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어도어의 미션보다는, 멸종으로 향하는 이 흐름을 멈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무총장은 멸종을 진지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였다. 시어도어의 멘토이기도 한 콜드웰 총장은 주변의 은근한 만류와 노골적인 반대를 노련하게 무시하고 그에게 충분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최고는 아니지만 괜찮은 팀을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자원은 아무래도 당장 더 급한 곳에 있었다. 괜찮은 팀의 괜찮은 팀원인 물리학자 위버 박사가 시어도어에게 한 첫 질문은 이랬다. “팀장님은 윤회를 믿으시나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박사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보세요,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인구는 계속 늘어왔잖아요. 아니, ‘거의’ 계속이요. 그럼 영혼이 어디서 새로 만들어지는 건가? 그건 그렇다 치고, 채 1년도 안 지나서 인류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그럼 이 영혼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요점이 뭡니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인류가 멸종하면 그냥 그걸로 빌어먹을 끝이라는 겁니다. 우린 여기 모여서 뭘 하는 거죠?” 또 다른 팀원인—이었던—생물학자 앤서니 박사는 이렇게 물었다. “인류가 계속해서 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멸종한다면, 그건 한 종의 끝입니다. 다른 수십만 종들의 끝처럼요.” 위버를 포함한 나머지 팀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앤서니의 생각은 팀원들에게—위버에게조차—이해받지 못했다. 시어도어는 그를 전출시켰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병마와의 전투에서 최전선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살렸다. 그리고 죽었다. - 시어도어의 사무실은 작지 않았다. 하지만 호화롭다고 할 수도 없었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책상과 의자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작은 책장이 있었지만 거의 비어있었다. 그리고 남은 자리에는 거대한 칠판, 그리고 큰 창문을 통해 사무실에 가득 내리쬐는 햇빛이 있었다. 시어도어는 그 햇빛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바닥에는 인조 양모 카펫이 깔려 있었다. 팀원들은 이 사무실에 들어올 때 실내화를 신어야 했다. 사무실은 충분히 넓었으므로, 팀원 모두가 들어와서 자유롭게 회의할 수 있었다. “저는 아무래도 우리 팀의 미션이 분명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린 인류가 멸종한 뒤에도 지속되는 인류의 의지를 설계해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단 말이죠.” 팀이 모이면, 보통 위버 박사가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그녀는 훌륭한 직관력을 가졌지만, 그 직관이 증거를 넘어선 곳에 있으면 그 불분명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애석하게도 이 팀의 미션은 계속해서 그런 상태일 운명이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그게 왜 의미가 없는지, 혹은 왜 안 되는지 따져보다 보면 우리의 답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시어도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자신도 그다지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팀원들에게는 들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런 일에 진정으로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메일로 막 쏟아지고 있죠. 거기부터 시작하나요?” 그걸 하나하나 전부 검토할 순 없었다. 대부분 비전이기보다는 추모였고, 계획이라기보다는 절규였다. 그럼에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나름의 의미는 있었다. 막연하게 줄지어 늘어선 일들이 왜 정답이 아닌지 걸러내면, 정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구체화될 것이다. “그, 왜 최근에 AI 기업들 통합했죠? 가이아¹였나? 그걸로 좀 분류해보죠. 비슷한 의견도 엄청 많을 테니까, 카테고리를 나누고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1] 가이아(GAIA, Global AI Integration Alliance):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의 AI 기업들이 통합하여 설립한 회사이자, 그 회사가 기존 모델들을 통합해 구축한 시스템. * 가이아를 돌려보자, 수천 통의 메일은 몇 개의 카테고리로 수렴되었다. 1. 인간 DNA 및 냉동 배아 등의 안정적인 보존 2. 역사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활자 수집 및 체계적 분류, 안정적인 보존 3. 오래도록 관리받지 못할 주요 유적의 소실 방지를 위한 처리. 즉 안정적인 보존 4. 특정 인물 혹은 집단의 유전자 선별 보존 5. 자신의 DNA를 연구해서 신인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 6.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우주로 쏘아 보내자는 주장 7.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검토할 가치가 없는 의견, 스팸, 스팸에 준하는 메일 ‘이런저런 잡다한 것’에는 인간의 유전자, 외계 문명에게 전하는 인사말—이 경우 사실상 유언이 되겠지만—, 지구의 문명을 압축하여 담은 데이터, 기타 상상할 수 있는 낭만적인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5번이 7번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당황스럽게도 5번과 같은 메일을 보낸, 자아가 비대한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시어도어의 팀은 5번과 7번을 제외한 나머지 주장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천문물리학자 샘과 시스템 공학자 칼, 문화인류학자 가브리엘, 발생생물학자 피위가 위버와 함께 의견을 주고받았다. “6번은 우주판 노아의 방주 같네요. 아니면 편지를 넣어 바다에 던진 유리병 같기도 하고요.” 샘의 말에 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건 다 쓸모없는 짓입니다. 전부 다 거창한 장례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겠군요.” “4번은 좀 음침해요.” 가브리엘이 말했다. “아무리 뉴에티카² 시대라지만, 이건 나치 냄새가 난다고요.” 피위가 목록을 훑으며 말했다. “모든 의견이, 인류는 멸망하지만 적어도 한 명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는 전설이다』처럼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위버가 말했다. “나는 죽지만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뒷일을 맡아줄 거다. 인류 탄생 이후로 늘 그래왔으니까.” “아니면 외계인의 방문이라도 기대하는 걸까요?” 가브리엘의 말에 샘이 대답했다. “그들이 방문한다면, ‘참 무덤을 열심히도 만들어 놨네’ 하곤 관광지 삼지 않을까요? 그건 인류 멸종을 대비한 것 치곤 너무 시시한 마무리인데요.” * [2] 뉴에티카: 멸종 위기 이후, 인간 존속을 최우선 가치로 재편한 새로운 윤리 체계. * 팀원들이 한마디씩 하는 동안, 시어도어는 햇살을 등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팀원들의 말이 맞았다. 이건 전부 인류 멸종 이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시도였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데 성공한다면 유의미한 짓인 걸까? 잠깐, 뭐라고? “뭐라고 했죠?” 팀원들은 순서 없이 서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어도어 팀장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피위 박사가 『나는 전설이다』 얘길 했잖아요. 다 죽더라도, 인간이 한 명 남는다면?” “그럼 멸종이 아닌 거겠죠.” 아니다. 이건 마지막에 어떤 두세 명, 혹은 한 명이라도, 어떤 사람이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시어도어의 머리가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위의 누군가가 아니라, 계획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면, 이 의견들은 나름의 쓸모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 유전자의 보존이 특히 그렇고, 나머지는 보너스겠군요.” “최후의 인간을 선발하시는 겁니까? 저는 지원하고 싶은데요.”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위버 박사. 인간이 한두 명만 남는다면 생물학적으로 멸종은 아니더라도 그저 멸종을 기다리는 마지막 개체가 되겠죠. 하지만 그 한 명을 잘 고르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럼 그건 멸종이 아닌데요. 저희는 그것까지 실패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건…” - 시어도어의 팀은 그들이 처음에 이해한 것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인류는 대부분 인류 자신의 잘못으로 이미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거나 멸종 위기에 빠트렸다. 일부 인간은 그 잘못을 되돌리려고 시도해 왔다. 남은 몇 안 되는 개체를 지키고, 서식지와 번식 기반을 복구하고, 인공 수정을 이용해서라도 개체의 규모를 키우는 식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인간이 관리하고 집행한다. 시어도어가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인간의 멸종이다. 인류의 멸종이라는 사건을 머릿속에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빅뱅 이전의 우주를 상상하는 것과 같았다. 다른 종이 멸종 위기를 겪을 때, 인류는 신 비슷한 역할을 해서 그 종을 살려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멸종한 종을 다시 살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멸종에서는 누가 신 역할을 해 주지? 문득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에 햇빛을 너무 오래 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우리는 멸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겠습니다.” 시어도어의 말에 위버 박사가 기특하다는 듯이 동의했다. “맞습니다. 꽤 과학자처럼 생각하시는군요.” “칭찬으로 듣죠. 우선 우리가 아는 가장 쉬운 정의는, 인간 개체가 한 명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운 건 피위 박사께 넘기죠.” “생물학적으로는 더 이상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없게 된 순간,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봅니다. 남은 개체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망 선고가 유예될 뿐이고요. 한편으론 우리가 멸종 프로토콜을 만들어두곤, 한 명이 남았으니 기다린다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그보다, 인간의 멸종은 다른 자연종의 멸종과는 좀 달라요. 인간에겐 모종의 기술이 있죠.” “맞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는 구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생명공학 기술을 잃은 열 쌍의 부부와, 그 기술을 온전히 운용할 수 있는 과학자 한 명은 인류의 존속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니까요.” “그렇다면 단순히 인간 개체수가 몇 명이 남았느냐를 세는 기준을 만들 순 없습니다. 좀 더 포괄적이어야겠군요. 인류가 보유한 기술체계까지 고려할 때,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남아 있는지를 봐야겠어요.” 시어도어가 팀원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가브리엘 박사의 말을 되풀이했다.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경로가 전혀 없으면 멸종이다. 포괄적으로는 그렇게 정의해 볼 수 있겠군요. 인간이 하나도 안 남고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는 한 줌의 인간만이 남는 시점이 옵니다. 그걸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다음이 결정될 겁니다.” ‘디자인’이라는 표현에 다소 거북함을 느낀 팀원도 있었지만 굳이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한 걸음 나아갔다고 여긴 시어도어의 눈빛에 옅은 고양감이 차올랐다. 시어도어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오늘의 회의를 닫았다. “우린 마지막 당직을 서게 될 겁니다.” - 시어도어는 당분간 바빴다. 초법적인 권한 없이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는 그런 권한을 받아내기에 비교적 수월한 때다. 그의 멘토가 가진 배경과 권력은 쓸 만했다. 관료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그저 누가 뭐라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제 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군인 한 명을 옆 소대로 보내려고 하면, 다른 초법자가 막아서지 않는 한 그는 옆 소대로 옮길 것이다. - “그러면 인류가 실질적 멸종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봅시다. 개체수가 너무 적어졌든지, 어떤 식으로든 생명공학 기술을 발휘할 수 없게 됐든지, 아니면 정말로 다 죽었든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세상의 바깥에 있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역시 최후의 인간이 되는 건가요. 이 팀에 오길 잘했다니까.” 위버 박사가 농담을 했지만, 시어도어는 못 들은 것 같았다. “우리, 혹은 그게 누구든, 이 바깥에 남은 사람이 다시 세상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뭘 할 수 있어야 멸종한 인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죠?” 오기가 생긴 위버 박사의 의욕이 지나쳤다. “섹스?” 시어도어는 위버 박사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위버 박사는 무안한 듯 손사레 치며 눈을 피했다. “아니, 팀장님 한동안 바쁘시더니 너무 차가워지신 것 같길래. 아직 사람이신지 확인해보려고 농담을 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동안 표정 없이 위버 박사를 바라보던 시어도어가 옅게 미소지었다. “압니다. 앞으로도 위버 박사는 그렇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팀장님. 집중하겠습니다.” “아니, 정말입니다. 저는 이제 정답만을 향해서 달려갈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게 다 뭘 위한 건지 잊을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도록 위버 박사가 도와주세요.” 시어도어는 약간 감명받은 듯한 위버 박사의 시선을 물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어야 멸종한 인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인류의 재건은 정말 가늠도 안 되네요. 그에 비하면 사람 한 명을 살려내는 건 쉬워 보일 지경이에요. 적절한 재료와 기술만 있으면 되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봐야겠군요. 이제부터 우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멸종한 인류를 다시 번영시키는 겁니다.” - 마침내 그럴듯한 임무를 얻은 시어도어의 팀원들은 서류 속에서 인류를 살려 나갔다. 인간 한 명은 생각보다 정말 쉬운 쪽이었다. 재료는 여기저기 많이 보관되어 있었고, 중국 쪽에 숨겨진 기술과 설비도 있었다. 이른바 ‘14일 제한’³ 같은 윤리 규정은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시어도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 설비를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져올 필요는 없었고, 실제 프로토콜이 진행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팀원들이 사전에 위치와 기술을 확보하도록 했다. * [3] 14일 제한: 인간 배아를 수정 후 14일 또는 원선이 나타나는 시점까지만 체외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생명윤리 원칙. * “자, 이제 사람 한 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말 신이라도 된 것 같군요. 몇 명이나 만들어야 할까요?” 시어도어는 늘 그렇듯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선 채 대답했다. “한 명으로는 부족해요. 너무 많아도 문제고요. 6명, 많아도 8명이 적당하겠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은 아예 고려되지 않은 숫자군요. 그렇다는 건 팀장님은 이 1세대를 아담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겠군요?” “맞습니다. 첫 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을 위해 길러지고 교육받을 겁니다. 일종의 세뇌 교육이 되겠지요.” “작년만 해도 이건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작년엔 인류가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키워진 1세대는 다음 세대를 키웁니다. 세대마다 인당 6~8명 수준으로 분배하면 적당하겠어요. 세대별로 어느 수준의 세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지, 세뇌의 농도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조절해서 정상 사회로 만들지는 가브리엘 박사가 초안을 설계해 주세요.” “이들에게 자연 번식은 허용할 생각이신가요?” “아니요. 그 역시 세대가 반복되고 사람 한 명의 의미가 집단에서 흐려질 때가 되어서야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이건 피위 박사가 설계해 주세요.” - 인류 멸종 시 실행될 프로토콜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1. 인공배양으로 8명의 1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2. 1세대는 관리자들에 의해 다음 세대의 포육을 목적으로 길러진다. 불임. 3. 1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2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4. 2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을 목적으로 관리자들과 1세대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5. 2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생존한 전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3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6. 3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 노동 자급을 목적으로 관리자와 선행 세대 전체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7. 3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선행 세대와 함께 3개의 거점에 나누어 배치한다. 각 거점에는 배치 인원을 기준으로 다음 세대를 배양하고 포육할 수 있는 설비와 기반 시설을 사전에 구축한다. 8. 각 거점에서 생존한 전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4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4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 노동 자급, 농업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관리자와 선행 세대 전체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9. 같은 비율로 5, 6세대를 거점 도시에 투입, 자급력을 판단한다. 생식능력은 유지하되 자연 번식은 통제한다. 10. 자급이 가능하면 배양을 멈추고 자연 번식을 시작한다. 11. 10단계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거점에서 1단계를 다시 시작한다. - 관리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계의 바깥에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섞는 순간, 그들은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된다. 차라리 신이 되는 편이 나았다. - 위버 박사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곤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네요. 하지만 마음에는 안 들어요.” “인간이 신을 흉내 내는 게 편안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아니라마다요. 마음에는 안 드는데, 목적을 분명하게 수행하는 잘 짜인 계획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드네요.” 위버 박사는 이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어도어의 눈빛은 다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인류는 알아서 다시 회복할까요? 역사를 떠올려보면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점 도시들은 각자 자기들의 신화를 가지게 되고, 다른 도시와 경쟁하게 될 겁니다. 임계점을 넘기면 경쟁은 소모전이 되겠죠.” “몇만 명의 인간이 자기 구실을 하게 두는 것만으로 우리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순 없어요. 서로를 멸망시키지 않고 더 확장해서, 자기들끼리 싸우더라도 인류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야 해요.” “신은 정말 피곤하겠군요.” “신은 우리가 이런 계획을 할 것까지 계획하느라 더 바쁠 거예요. 우린 우리 일을 하죠.” - 시어도어와 팀원들은 다음 단계로 거점 도시 간의 균형을 세밀하게 설계했다. 군사, 경제, 생산 등 어느 한쪽이 패권을 가질 수 없도록,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단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게 했다.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했고, 약한 세뇌 및 선전·선동이 아직 필요했다. 국지적인 충돌로 한 그룹이 멸망하지는 않을 수준으로 규모가 커지고 나서야 새 인류를 자유롭게 해 줄 계획이었다. - 하지만 그들이 여기까지 개입할 계획을 세우고 나니, 더 나아가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인류가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을 또 겪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멸종을 이겨내고 회복에 성공한 인류가 확장하고 번영을 이루는 데까지의 원리와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 계획의 골격이 갖춰지자,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기존의 예측 체계들은 각자의 목적에 맞춰 잘려 있었고, 국가와 기관마다 열람할 수 있는 자료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실패한 연구와 폐기된 정책, 공개할 수 없는 실험 결과는 서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팀은 가이아에 사용된 통합 분석 체계를 기반으로, 이 모든 자료를 하나의 계산 안에 넣을 수 있는 전용 모델인 티레시아스를 구축했다. 물론 시어도어의 초법적 권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 모델은 오로지 그의 팀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 팀원들은 모두 시어도어의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가득해서 햇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시어도어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서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다른 팀원들은 전부 중얼거리며 집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멸종에 대한 현실감, 신 노릇의 고양감, 인간성의 해체, 거기에 과로까지 더해 모두 묘한 광기에 사로잡힌 분위기였다. “이거면 될까요?” 시어도어의 물음에 위버 박사가 여전히 서성거리며 대답했다.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잘 짜인 시스템인데, 유연성이 부족해요.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관리자가 2~3세대를 포육하는 것까지로는 부족해요.” 잠시 생각하던 시어도어가 다시 물었다. “지금 모델에, 세습되는 관리자를 추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각 세대에서 한 명을 뽑든지, 한 명을 더 만들든지 해서요.” “보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변수만 늘어날지도 몰라요. 그리고 관리자는 이 신인류 바깥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관리자가 되면 그건 그야말로 신이 내린 황제가 돼요.” “인공지능은 어때요?” “안 되는 거 알면서 물어보시는 거죠? 팬데믹이 몇십 년만 더 늦게 왔어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관리 인력도 부족해서 모든 모델을 다 통합해서 겨우 버티고 있잖아요. 티레시아스는 괜찮지만 목적에는 안 맞아요. 종합적으로, AI는 아직 부족하고, 이대로 멸종으로 향한다면 더 좋아질 시간도 없습니다.” 위버 박사는 시어도어의 눈빛을 읽었다. 이 질문들은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팀장님, 뭔가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 거죠?” 시어도어는 위버 박사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우리는 신인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든, 아니면 부모든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더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돌봐야 해요. 이렇게 배경만 만들어 놓고 떠날 게 아니라, 그들 곁에서 직접 돌봐야 해요.” “그래서 3세대까지 기르고 교육하는 거잖습니까? 그나마도 인구가 지금 속도로 계속 줄어서 정말 곧 멸종을 해야 우리가 할 수 있고, 아니면 다른 집단을 미리 선발해야 해요.” “다른 집단이 우리의 계획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인류에게 추앙받는 걸 즐기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면요? 지금 당장 인류를 멸망시키고 프로토콜을 진행할까요?” 위버 박사가 농담했지만, 시어도어는 이번에도 웃지 않았다. “우린 시스템을 아주 잘 짜뒀어요. 이 시스템이 왜곡되지 않게 할 버팀목이 필요해요. 신인류의 입장에서 이 계획을 집행하는 건 엄청난 권력이고, 권력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조종해 시스템을 오염시킬 겁니다.” “그만 빙빙 돌리시고,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게 뭔데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나은 대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요.” “팀장님, 이 계획을 지금 당장 실행한다고 해도, 3세대가 태어나는 건 30년 뒤예요. 4세대가 그나마 우리가 운이 좋으면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예요. 우리는 멸종 프로토콜이 성공하는지 살아서 확인할 수 없어요. 결국엔 우리 손을 떠난다고요.” “나는 그게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말했듯이, 아이에게 우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우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불로초라도 찾으러 다니시게요?” 위버 박사는 초조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농담을 던졌지만, 시어도어는 끝내 웃지 않았다. “필요하다면요. 이 계획이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존재해야 해요.” - “말도 안 돼요.” “그건 예상한 반론입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반론이 없으면 진행하죠.” 시어도어는 이제 눈가리개를 한 경주말 같았다. “아니요, 팀장님. 기다려보세요. 우리가 지금까지 짠 계획만으로도 이미 신 놀음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말 신이 되시려고 그래요?” “신이 될 생각 없습니다. 책임을 다하려는 거지요. 다들 ‘이럴 거면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느냐’는 질문, 해 본 적 있지 않습니까? 신인류가 그 질문을 던질 때 답해주려는 거예요. 더욱이, 정말로 이들은 다른 존재, 즉 우리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태어나게 됩니다. 그들이 존재론적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이 계획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무려 세뇌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계획을 그들 스스로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끔찍한 짓은 계획에 넣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것만 믿고 있을 순 없어요. 그게 잘못되면 기껏 살려낸 인류가 다시 자멸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실패에 스스로 대비할 수도 없어요. 그렇게 된다면, 그냥 인간 몇 쌍을 만들어서 지구 여기저기 흩뿌려두고 인류가 다시 번성하길 바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비약이 심하시네요 팀장님…” “비약이 아닙니다.” 입을 꾹 닫고 눈으로만 회의를 좇던 칼 박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비약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프로토콜과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일관된 관리자가 필요해요.” “일관된 관리자라.” 위버 박사가 초점이 없는 눈을 한 채 칼의 말을 되풀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된 숫자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방 안에—아마 바깥 어디에도—없었다. 이들이 만든 프로토콜은 크게 4단계로 나뉘었다. 멸종, 회복, 확장, 그리고 번영. 각 단계의 인구, 기반시설 등 지표의 기준이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프로토콜이다. 멸종 단계만 해도 그들의 남은 생 안에 완수될 수 없었다. 회복과 확장은 그다음 일이고, 번영은 단지 인류가 다시 80억 명에 이르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계획대로 그 단계에 돌입한다고 해도, 정말 그런 사회가 만들어진 건지 확인하는 데는 도대체 얼마나 걸릴까?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일관된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가브리엘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건 다른 얘기예요.” “다르지 않습니다.” 시어도어가 대답했다.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과 계획에 책임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의 목적을 설명할 순 있지만 책임을 물려줄 순 없어요.” “후계자를 교육하기로 했잖아요. 우리가 충분히 교육해서 그들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길 바란 계획 아니었나요? 적당한 시점에 과거의 유물은 빠지고 새 시대의 새 인류에게 바통을 넘기기로 한 건 줄 알았는데요.” “정확해요. 다만 적당한 시점이란 게 우리의 생을 한참 넘어선 때라는 걸 깨달았을 뿐입니다.” “이건 도대체…” 시어도어는 가브리엘의 말을 끊고 계속 말했다. “후계자의 후계자는 누가 가르치죠? 그 후계자는요? 세대를 거치며 계획은 계속 새롭게 해석될 겁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예외로 시작하겠죠. 그 예외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계획을 더 잘 이해했다고 믿을 겁니다. 그게 단지 자신들 소수 몇 명의 기득권에게 더 좋은 일일 뿐이라는 걸 자각조차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결국 이 계획은 방향을 잃고 좌초하게 될 겁니다.” “그게 문제라면 여러 집단으로 나누면 됩니다.” 샘이 말했다.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이 모든 권한을 갖지 않게 하는 거예요. 권한을 분산하고, 상대방이 계획을 왜곡하는지 감시하게 하는 거죠.” “그 집단들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면요?” “합의를 해야겠죠.” “합의하지 못하면?” “염병할 다수결이라도 하겠죠.” “바로 그 순간 계획은 정치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치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지 못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토콜의 회복 단계에서도 비슷한 걸 하잖아요?” “달라요. 그건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거고, 이건 그보다 높은 차원의 문제예요. 우린 빌어먹을 신 놀음을 하고 있죠. 삼권 분립이 실현된 신화가 있다는 얘긴 못 들어봤어요.” 피위 박사가 한쪽 벽에 기대어 물었다. “정말 신이 되시겠다고요? 정말로 신처럼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겠다는 겁니까?” “영원이라는 말은 부정확해요. 계획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동안입니다.” “그게 영원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영원이어야겠죠.” 시어도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칠판으로 다가가 수식과 문장들을 아무렇게나 지우곤 점을 하나 찍었다. “우리.” 그 점에서 오른쪽으로 1m쯤 옆에 점을 하나 더 찍었다. “번영.” 두 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건 계획이 아니에요. 소원이지.” “계획으로 만들어야죠.” “대체 어떻게요?” 분필을 내려놓은 시어도어가 대답했다. “그 방법을 찾는 게 우리 일입니다.” -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시어도어는 팀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이 계획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책임을 다하기 싫은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만든 것은 완벽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그저 끔찍하기만 할 뿐이었다. 시어도어의 다소 급진적인 주장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들 모두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를, 정말로 진실되게 책임지고 싶었다. 시어도어의 시선을 외면하던 피위 박사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입을 열었다. “노화를 막는 연구는 이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성공할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어요.” “장담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피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시어도어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연구 지시를 내리는 건지, 종교적 계시를 내리는 건지 판단하려는 표정이었다. 위버 박사가 칠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떤가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동일한 집행자가 계획 전체에 걸쳐 존재할 수 있느냐.” “그게 다른 질문인가요?” “영생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죠.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계획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거예요. 모든 시간을 연속해서 경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거예요.” “냉동인간을 말하는 건가요? 그건 안 돼요. 공식적인 연구뿐 아니라 비공식적이고—구세계 기준으로—비윤리적인 연구도 싹 뒤져봤지만 성공에 가까운 것도 없었어요.” 피위 박사는 이미 티레시아스를 이용해 알아봤던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하지만 위버 박사는 그 얘길 하려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샘이 고개를 들었다. “상대론적 항해.” 위버가 다시 되풀이했다. “상대론적 항해.” 시어도어가 위버를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항해하면 외부보다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광속에 가까우면 유의미할 정도의 차이가 나죠. 이건 상용화되지 않았고 유인 우주선으로 실험한 적도 없지만, 기술 자체는 존재합니다. 미국이랑 중국이 가진 걸 잘 섞으면 돼요.” “집행자들을 교대로 보내면 되겠군요. 계획이 안정될수록 우리가 개입해야 할 간격은 늘어날 거예요. 점점 더 멀리 다녀오면 되겠네요.” “항해 중 사고가 나면요?” “여러 척으로 나눠서 보냅니다.” “우주 항해는 좋은 우주선 한 척 가지고 하는 게 아닌데요. 지구 쪽에도 기술이 있어야 해요.” “귀환 시점에 맞춰 기반과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해야죠.” 샘은 대답하긴 했지만 자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상대론적 항해는 시간을 이기는 방법이라기보단 시간으로부터 잠시 도망치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돌아올 장소가 사라지면, 그들은 그저 인류가 두 번 멸종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이 될 뿐이었다. “그래도 해 볼 만 합니다. 집행자의 시간을 분산시킬 수 있어요. 지상에 남은 시스템과 독립된 예비 관리자도 확보할 수 있고요.” 시어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하세요.” “상대론적 항해를요? 아니면 불로초 찾는 걸요?” “둘 다요.” - -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정갈한 콧수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단지 저 나이 많은 의장만은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예리한 시선으로 꿰뚫어보건대, 저 노인은 심지어 일말의 만족감을 보이고 있었다. 늙은 여우 같은 교활한 노친네. 늙은 여우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시작하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멸종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고, 확실시되면 바로 프로토콜을 가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멸종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커빙턴이 말했다.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입니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지적할 필요 없네.” 의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 계획은 인류가 멸망하면 실행될 걸세. 실행되는 날에는 반대할 사람도 이유도 남아 있지 않겠지.”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 쓰일 어마어마한 예산은요? 또 인력은? 지금 당신들은 절망에 휩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역병 따위가 아니라…” “호흡기 질환일세.” “예?” “호흡기 질환이라고, 이 전염병들은. 자네 식으로 표현하자면 ‘숨결을 타고 침입한 역병’쯤 되겠군.” 두 번째 일격이 뜻밖의 순간에 모욕적으로 저지되자, 커빙턴은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우린 반년 만에 절반을 잃었네. 이 속도라면 우린 정말로 멸종될 걸세. 준비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그걸 준비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나? 예산 따윈 문제가 아닐세. 물론 멸종을 막는 게 최우선이지. 그걸 막지 못했을 때 그대로 끝장나느냐, 다시 부활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넨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커빙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짓거리였다. 이 미친 짓거리에 계속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입을 꾹 닫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으로 향했다.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의장이 커빙턴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이 회의의 모든 세부 내용은 기밀입니다. 모험에 나서는 이가 없길 바랍니다.” 윌리엄 커빙턴은 고개를 돌려 의장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 미소를 짓고 있다고 믿었다. “무슨 세부 내용 말씀이신지? 저는 오늘 들은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만.” - 〈커빙턴 장관, 사무총장의 결단 촉구〉 《뉴욕 타임스》 발췌 윌리엄 커빙턴 장관이 감염병 사태에 대한 국제기구 사무총장의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현 지도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커빙턴 장관은 어제 오후 집무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조심스러운 관찰자도, 실패를 설명하는 유능한 기록자도 아니다”라며 “폭풍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회의록의 문장이나 다듬고 있는 자에게 선장의 자리를 맡겨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그는 “이것은 질병 하나와의 싸움이 아니”라며 “숨결을 타고 침입한 역병이 폐부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공포는 거리로 번지고 무기력은 국가의 심장부를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위험이 저절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지도부의 마비된 의지”라고도 덧붙였다. …… 커빙턴 장관은 인터뷰 내내 현 지도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자신이 사무총장직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잠시 침묵한 뒤 “지금 개인의 영달을 논하는 것은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왕관의 무게를 재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위기 수습을 위해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 권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책임이 나를 요구한다면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인류가 나의 이름과 시간과 명예, 나아가 목숨까지 필요로 한다면 남김없이 내놓을 것입니다. 창공을 가르는 매가 폭풍을 두려워해 날개를 접지 않듯, 역사가 우리 세대에 부여한 의무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 에드먼드 콜드웰 유엔 사무총장실은 커빙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총장실 관계자는 다만 “각국 및 전문기관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필요한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며 “개별 인사의 정치적 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윌리엄 커빙턴 장관, 감염병으로 사망…향년 57세〉 《뉴욕 타임스》 유엔 사무총장의 위기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윌리엄 커빙턴 장관이 감염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커빙턴 장관실은 그가 지난주 감염 사실을 확인한 뒤 관저에서 치료를 받던 중,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어젯밤 숨졌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감염 경로나 치료 경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자와 두 자녀를 남겼다. 장례 절차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 - 시어도어의 팀은 이제 두 가지 미션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계획보다 먼저 죽지 않을 집행자를 만드는 일, 그리고 집행자의 일부를 시간의 흐름 바깥으로 보내는 일. 상대론적 항해 계획은 빠르게 거대해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몇 번의 시험 비행이 성공했다. 그러자 팀원 몇 명을 태운 항해선이 지구를 떠났고, 광속에 가까워졌을 무렵 신호가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돌아오는 길 자체를 잃어버린 것인지,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잠정적 실패로 기록되고, 계획은 중단되었다. 다른 한편, 지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찾던 팀원들은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성공을 거듭했다. 세포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속도를 줄이거나, 결국 낡아서 못 쓰게 될 장기가 있던 자리는 유지 보수만 잘 해주면 계속 쓸 수 있는 기계 장치가 대신했다. 어떤 방법은 환자를 젊게 만들었고, 어떤 방법은 젊은 시체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팀원은 수술대에서 죽었고, 어떤 팀원은 바뀐 몸으로 오래 버티지 못해 죽었다. 시어도어는 어찌 되었든 죽지 않는 쪽에 가까워져 있었다. 재현되기 어려운 성공이었고, 성공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성공이었다. 많은 것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많은 것을 다시 채워 넣었다. 다만 계획에 대한 책임만은 덜어내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시어도어 쇼 자신이었다. - 콜드웰 사무총장은 꽤 오래도록 살아남은 편이었다. 병상에 누운 그는 시어도어를 불러들였다. 어차피 시어도어의 폐는 이제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있었다. 사무총장은 자신의 멘티에게 자신이 쓰던 만년필을 건넸다.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만년필이었다. “자네가 맡아주게.” 시어도어는 만년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적임자라고 확신하십니까?” 사무총장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같은 때에 확실한 건 없지. 믿을 뿐이네.” “무책임하군요.” 시어도어는 만년필을 받아들었다. - 〈시어도어 쇼, 유엔 사무총장직 승계〉 《뉴욕 타임스》 유엔은 전임 사무총장의 사망에 따라 시어도어 쇼 사무차장이 사무총장직을 승계했다고 밝혔다. 총회 표결은 열리지 않았다. 유엔 측은 현재 활동 가능한 회원국 대표들의 묵시적 동의 아래 쇼 사무총장이 비상 체제와 인류 존속 계획을 지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 〈신규 감염·사망 12주 연속 감소…“최악의 국면 지났을 가능성”〉 《뉴욕 타임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신규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12주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주요 도시에서는 임시 치료소와 격리 구역 일부가 폐쇄되기 시작했으며, 중단됐던 교통망과 필수 생산시설도 제한적으로 재가동되고 있다. 다만 감시 체계가 붕괴한 지역이 여전히 많아 감염병의 종식을 선언하기에는 이르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인류가 대유행의 마지막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감염병 사망자 100일 연속 ‘0’…세계 인구 감소세 멈춰〉 《뉴욕 타임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병으로 인한 신규 사망자가 100일 연속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난 이전의 약 10%까지 감소한 세계 인구는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인류가 장기적인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면서도, 붕괴한 사회 기반과 극심한 인구 불균형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수십 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 시어도어는 사무총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집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어차피 남는 방은 넘쳐났다. “티레시아스.” “예, 사무총장님.” “30년 안에 멸종 프로토콜의 실행 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3.7%입니다.” “10년 안에는?” “1.4%입니다.” 시어도어는 큰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뒤 티레시아스에게 다시 물었다. “현존 인류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나?” “회복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4단계 프로토콜의 정의를 사용해.” 티레시아스는 공개된 모든 자료와, 자신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비밀스런 자료를 사용해 계산했다. “정량적으로는 프로토콜상 회복 단계 돌입 기준을 충족합니다. 다만 프로토콜의 기준은 신인류를 대상으로 합니다. 현존 인류는 포육이 통제되지 않았고 세뇌도 받지 않은 집단입니다.” “현존 인류의 자력 회복 가능성은? 정의상 확장 단계로 100년 안에 도달할 확률을 계산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37.4%입니다.” “현존 인류에게 곧장 회복 프로토콜을 실행하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54.4%입니다.” “현존 인류를 프로토콜 조건에 맞추는 작업을 병행하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98.7%입니다. 48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90.2%입니다.” - 인류는 다른 종과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었고, 파괴를 막을 수도 있었다. 시어도어의 팀은 심지어 인간이 멸종한 뒤에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방법과 단계를 고안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검토했다. 거의 전부 필요했고,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계획의 중심에는 시간을 넘어 동일한 책임을 유지할 존재가 필요했다. 그 존재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 당직자였다. -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시어도어는 마침내 눈을 뜨고 티레시아스에게 알렸다. “회복 프로토콜을 실행한다.” - - 도현은 이서와 함께 나우바에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소란으로 망가진, 도현이 제일 좋아하던 의자를 대신해서 사장님이 새로 구입한 의자였다. 네안의 신체 규격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도현의 몸에 잘 맞는 의자를 구해줘서 도현은 흡족했다. 둘은 맥주를 마시며 신임 UN 사무총장의 디코이가 취임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저 디코이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저 연설이나 직함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 사실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늘 그래왔던 일이지만, 도현은 문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 같은 얼굴을 굳이 왜 만들어내야 하지? 어차피 얼굴을 안 드러낼 거면 그냥 대리인이 말하거나 글로만 발표해도 되지 않나?” “선배, 심리학 공부도 좀 해요.” 더 물어볼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찾아보지 뭐. “하지만 저 사람은 이름도 없잖아.” 이서가 화면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되게 오랫동안 같은 사람이 연임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디코이만 갈아치우면서요.” “얼마나?” “아무도 모르죠.” 화면 속 얼굴은 신뢰할 만한 표정을 지으며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약속했다. “UN은 자세한 얘길 안 해주니까요.”
EP #3. 플래니모
9/7 공개
EP #4.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10/12 공개
EP #5. Every Version of Me
11/9 공개
이야기는 계속 공개됩니다
다섯 편의 단편과 다섯 곡의 음악은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모든 이야기는 누구나 볼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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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니모 후원
9/7 12:00 ~ 9/17 17:00
BOT Season2의 세 번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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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sic
₩50,000
앨범아트 스티커, 키링, 포스터,
그리고 앨범 및 영상 크레딧
Thanks to에 후원자명 수록
2. Comp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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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의 모든 구성
+ 싸인 폴라로이드, 티셔츠, 단편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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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간의 소품을 실제 굿즈로 옮겼습니다.
본 페이지의 상품 이미지는 실제 제작된 굿즈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연출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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