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세계의 서로 다른 고독을 기록하는
다섯 개의 노래와 다섯 편의 이야기
CURRENT
UP NEXT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단편 공개/ 후원 시작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발매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D - 00d : 00h : 00m :
D - 08D : 04H : 58M :
00s
04S
NOW LIVE
DDAYNEXTEND
BOT Season #2 설명회
EP #1. 잔여인간
네안의 주먹은 크고, 빠르고, 아프다. 김도현 경위는 저 미친 주정뱅이가 날리는 주먹을 세 번째로 피하는 중이었다. “적당히 하라고.” “우워어어어어!” 술독에 빠졌거나 감정이 격해진 네안은 종종 말 대신 소리를 지른다. 이 미친 네안은 둘 다였으니, 저렇게 나올 줄은 알았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이건 네안을 일종의 유인원으로 보는 편견을 강화한다. 네안의 사회적 인식을 한 단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놈은, 자신의 분에 못 이겨 손에 걸린 의자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리쳐 부쉈다. 아. 나우바에서 제일 좋아하는 의자였는데. 미친 네안이 다시 도현에게 주먹을 뻗어왔다. 이번엔 왼손. 도현은 양손을 들어 막는 척하다가 옆으로 슬쩍 빠지며 놈이 제풀에 넘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술에 취한 네안도 네안이다. 엄청난 취기에도 놈의 근육은 기어이 반응을 해냈다. 잠시 중심을 잃는 듯하더니 왼발을 강하게 딛고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 몸집에, 그 근육에 허리까지 써서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도 죽일 생각은 아닐 거다. 아마도. 팔을 들어 날아오는 주먹을 받아낸다. 뼈가 부러졌나? 괜찮겠지. 재빨리 눈을 굴려 피해상황을 스캔하자니, 어디 보자. 테이블 두 개, 의자 하나, 술잔들—은 깨져서 몇 개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코스터 몇 장. 이대로 계속 피하기만 하다간 도현의 소중한 단골집이 다 무너질 판이었다. 도현은 뒷발을 단단히 디뎠다. “적당히” 받아낸 주먹을 옆으로 흘리며 카운터를 쳤다. “하라고” 두 번째 주먹은 놈이 무의식적으로 올린 가드에 막혔다. “했지” 이번엔 옆구리를 노렸다. 빈틈을 잠시 살피다가, 마지막으로 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새끼야!” 마지막은 아끼던 의자의 몫이었다. 놈이 좀 멍해진 것 같다. 진정했나? 도현은 가쁜 숨을 내쉬며 놈을 관찰했다. ... “우워어어어어어어!!” 아닌가 보다. — 서이서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물론 그 녀석이 있었어도 싸움은 도현의 몫이었을 테다. 그래도 규범이란 게 있는데 이 인간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니까. “오와오우우애” 오? 이번엔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자, 지금 우는 건가? “뭐라고?” “온다고애누데” “온다고 했는데?” “아나스어” “안 왔어?” “흐어어어어엉” 도현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던 사장님을 쳐다봤다. “온 지 한 네 시간 됐어. 일행이 있다면서 테이블을 맡더라고. 처음에는 기분 좋아 보였는데, 술 시키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나중엔 아예 독한 술만 시키더라고.” 아. 실연의 아픔을 겪은 미친 자구나. 그러면 말은 되지. “안 올 수도 있지. 다음에 좋은 사람 만나면 되잖아.” 도현 딴에는 공감이랍시고 한 얘기인데, 주변 구경꾼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어쩌라는 건지. 그러면 지들이 진작 나서서 말리든가. “그렇다고 이렇게 이거 술집을 다 부수면 어떡해. 당신 이거 다 물어줘야 되는데 돈 많아?” 표정이 안 좋던 사람들이 이제 고개를 저으며 자기들끼리 웅성거린다. 참 내, 그럼 안 물어줄 건가? 도현은 구경꾼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네안을 쳐다봤다. 놈의 눈빛이 조금 뭐랄까, 또렷해져 있었다. “그딴 건 모르게꼬, 온다고 했딴 말이야!” 발음도 점점 정확해지네? 술이 깨고 있나 보다. 네안데르탈인은 독한 술에 훅 가지만, 알코올 분해도 빠르다. 난동을 부리다 갑자기 술이 깨버린 네안은, 한마디로 굉장히 머쓱한 인간이 된다. “온다고 했는데 안 왔다는 거지? 그래서 이렇게 술집을 다 부순 거고?” “그… 네 맞아요. 온다고 했으니까… 어… 기다리면… 오는 줄 알았죠….” “선생님, 이제 상황 대충 파악되시죠? 서로 같이 좀 가주셔야겠는데요.” 싸움 구경이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다시 각자의 대화로 돌아갔다. 네안에 대한 멸칭으로 간주할 만한 단어도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리지만, 도현은 무시했다. 다들 술 취한 인간들이니까. — “오, 마무리됐네?” 서이서가 드디어 나타났다. 도현의 파트너. 이럴 땐 절대 안 나타나는 뺀질이 파트너. “또 어디 숨어서 끝날 때까지 보고만 있었지? 술이라도 마셨나?” “무슨 소리세요 선배, 절 뭘로 보시고. 부랴부랴 왔는데 경위님이 잘 해결하신 거죠.” 언제까지나 이렇게 호호거리며 어물쩍 넘어갈 생각일까? “규범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확실해요? 난 좀 다르게 배웠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중앙 경찰학교에서 뭐 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거라곤 규범이랑 경례하는 법이 다인데 그걸 까먹었어?” “선배 혼자 그렇게 FM대로 구니까 매번 몸이 고생하는 거잖아요. 학교에선 맨날 규범 타령이었지만 밖에선 그 사이로 요령껏 안 다치는 법만 배웠다고요.” 아, 또 말장난하는 거였구나. 도현은 이런 데 한 박자 늦을 때가 많았다. 여기에 사장님까지 끼어들었다. “어유, 이서 좀 그만 잡아. 쟤도 오자마자 나한테 상황부터 물었어. 너 싸우는 동안 사람들 가까이 못 가게 잘 막고 있었고. 너는 맨날 너만 일하는 줄 아니?” 도현은 머쓱해서 툴툴거렸다. “됐고, 보고서는 네가 써.” “언제는 선배가 썼어요? 일단 들어가시죠.” 정리하고 철수하려는데 사장님이 서이서를 불러 세웠다. “이서! 계산하고 가야지!” 흠칫 놀란 이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사장님을 데리고 멀어지는 동안, 도현의 얼굴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찌푸려졌다. 이 자식이 심지어 현장까지 와놓고 합류는 않고 술을 마셨다고? 이건 정말 한소리 해야겠다. “야, 서이서 너…! 놀러 왔냐? 여기가 아무리 편해도 지금은 현장이잖아.” “선배, 맥주 딱 한 잔 마셨어요. 선배가 저 미친 네안 제압하는 데 정확히 3분 걸릴 거 뻔히 아는데 내가 뭐 하러 끼어드나? 거치적거리기만 하지. 여기까지 온 김에 목 좀 축인 거고. 선배가 일을 너무 깔끔하게 처리해서 내가 혼나는 게 말이 되나요?” 또 이상한 소릴 한다. 이서가 이렇게 이상한 말을 마구 쏟아내면 뇌가 피로하다. “그러니까 얼른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보고서나 쓰러 가시죠, 선배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말이 더 많다. 정말 맥주 한 잔만 마신 걸까? “알았어. 가자. 보고서 제목을 진짜 그걸로 쓸 건 아니지?” “네안이 네안을 줘팼으면 동족상잔이죠? 아니면 뭐 ‘젊은 네안의 슬픔’ 같은 건 마음에 드세요?” 도현은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저 네안은 젊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같다. 이서의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맥이 풀린다. 네안과의 격투보다 이쪽이 더 힘들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참는다. ‘서로 다른 인간종끼리 불필요한 폭력 및 신체 접촉을 자제하라’는 것도 규범에 나와 있었다. 좀 뉘앙스가 이상하긴 하다. 그럼 사피엔스끼리는 불필요한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일까? 하지만 그 규범을 만든 분들도 깊은 생각이 다 있었겠지. 굳이 더 생각하고 싶진 않다. “…인종 청소 당하고 싶은 거 아니면 이제 그만 입 다물고 가, 젊은 서이서 씨.” — 오늘은 피곤한 밤이다. 근육이 많다고 해서 힘쓰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미친 네안… 주취자의 주먹을 받아낸 도현의 손목이 맥박을 따라 지끈거렸다. 도현은 집에 도착하자 현관 센서등이 꺼지기도 전에 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거실 소파에 대충 구겨져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다. 바깥에도 더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시간이었다. 센서등이 꺼져 거실이 어두워지자 맥주캔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현은 그대로 소파에 파묻힌 채 맥주를 들이켰다. 캔 표면에 맺힌 이슬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꿀꺽. 꿀꺽. 첫 입에 반 캔은 마신 것 같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윗배에 자리를 잡는다. 도현은 속이 서서히 서늘해지는 감각을 음미했다. 달빛이 블라인드 사이를 제 집인 양 밀고 들어와 거실 벽면에 무심하게 사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빛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이 공간에 꽉 찬 적막이 무거웠다. 도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후…’ 길게 뱉어낸 숨결이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문득 세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이 이 세계의 구성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길을 잃은 관찰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관찰자가 도현의 몸에서 멀어져 옥상 위로 붕 떠오른다. 십여 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이 작은 아파트단지에만도 사람이 1천 명쯤 살고 있다. 누군가는 방송을 보고 있고, 누군가는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불이 이미 꺼진 집도 많다. 저 중에도 길을 잃은 영혼이 또 있을까? 천 명이면 한두 명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멀어진다. 도시가, 이 나라가, 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20억 명이 살고 있다고? 20억이라니, 생각하기 버거운 숫자다. 한 명한테 1달러씩만 받아도 20억 달러네. 부자가 되겠군. 이 숫자도 믿기지 않는데, 불과 100여 년 전에는 80억 명이 있었다니. 그건 정말 이상하고 아득하다. 상상조차 잘 안 된다. 발 디딜 틈은 있었을까? 사피엔스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턱대로 많아졌던 걸까? 길 가는 사람과 끝없이 어깨를 부딪히고 정신없이 사과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빽빽하던 세상에서, 겨우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70억 명이 넘게 증발했다고 한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건 대체 어떤 수준의 비극이었을까? 70억 개의 죽음. 도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때를 떠올렸다. 슬펐다. 그때의 인류는 35억 배나 슬펐던 걸까? 그 압도적인 비극의 무게를 이 행성이 어떻게 버텼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도현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신의 존재의 근원까지 파고들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100여 년 전에 우리 종은 세상에 없었다니.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멸종했었다고 한다. 그럼 그 긴 세월 동안 사피엔스 홀로 이 행성을 지켰던 걸까. 외로웠겠군. 그래서 그렇게 많아지기로 했던 걸까? 어쨌든 그들이 우리 종을 되살려내기로 결정한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내 집 소파에 누워 있다. 욱신. 손목의 통증이 도현을 찌르자 부유하던 영혼이 갑자기 몸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왔다.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잡아 꾹 눌렀다. 통증이 잠깐 퍼졌다가 가라앉는다. 4만 년 만에 깨어나서 한 일이, 4만 년 만에 깨어난 형제의 술주정을 몸으로 받아준 거라니. 도현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멸종했다 돌아온 주제에 엄살은 사치지. 손목은 괜찮을 거다. 맥주 캔은 어느새 비었다.
EP #2. Flawless (ghost)
울음을 멈추어라. 창공을 가르는 매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심해의 거대한 고래는 묵묵히 자신만의 항로를 헤엄쳐 나아갈 뿐이다. 이제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역병 따위가 아니니, 별빛마저 집어삼킨 눈먼 어둠과도 같은 절망이다.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콧수염 끝을 매만지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겁에 질린 인간들이었다. 그는 의장석으로 곧장 다가가 늙은 사무총장의 굽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착석하고 웅성임이 잦아들자, 비로소 의장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번에 인류는 정말로 멸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실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한때는 이백 개가 넘는 국가의 대표들이 빼곡히 앉아 있던 거대한 UN 본회의장을 폐쇄하고, 이제 그 관료들 중 십수 명만이 비좁은 임시 회의실에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처지였다. 평소라면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고상한 명분을 앞세워 영웅을 자처할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들 역시 폭풍 앞에 노를 거둔 항해자들처럼 잠잠했다. 다만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그들 각자의 영혼을 매만질 뿐이었다. 이 자리가 일상적인 탁상공론의 연장선이 아님을, 의장의 저 말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지를 모두가 확실하게—물론 이 절망적인 공기 속에서도 홀로 우아한 초연함을 잃지 않은 자가 있었지만—알고 있었다. 의장의 메마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멸종을 막기 위해, 문자 그대로 전대미문의 노력과 집중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비책 역시 이미 마련 중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커빙턴의 멋들어진 콧수염이 살짝 들썩였다. 전대미문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은, 전대미문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예비책 따위에 나눠줄 자원은 없다는 말이다. 인류는 고작 반년 사이 두 번의 전염병에 절반을 잃었고, 나머지 절반은 절망에 잠식된 패배주의자가 되었다. 예비책이란 다름 아닌 그들의 나약한 타협이다. “멸종을 앞둔 마당에 다른 어떤 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그래도 세계 각지에서 별의별 단체와 개인들이 메일을 퍼부어대고 있습니다. 다들 멸종에 대비해야 한다며 하잘것없는 갖가지…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죠. 그런 걸 의견이라고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커빙턴은 늘 그렇듯이 우아한 억양으로 연설하듯 말했다. 의장이 생기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예비책일세. 인류가 멸종한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뭘 준비할 것인지를 말하는 거라네.” 그는 느릿하고 차분한 말투로 얘기했지만, 말을 시작하기 직전에 짧은 한숨을 쉰 것 같았다. 커빙턴은 이 노인이 자신을 훈계하듯 대하자 은근한 부아가 치밀었다.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앞에서 어떤 단어를 골라야 이 늙은이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커빙턴은 보좌관인 클레어 양이 출력해준 이메일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보내온 메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십니까? 어디 볼까요. 유적들에 대한 보존 처리. 기록물 보관소의 증축. 인간 DNA 보존. 아, 이건 예술품의 이관. 훌륭하군요.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게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류가 정말로 멸종한다면 결국 다 의미 없는 짓입니다. 그런 곳에 인력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런 알량한 구색이나 맞춰놓고 ‘인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며 기만을 저지를 셈입니까?” 바로 지금이다.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결정적인 일격을 날렸다. “창공을 가르는 매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지, 지나간 과거를 부둥켜안고 주저앉아 울어선 안 됩니다.” 과장 없이 절제되고 우아한 시적 은유, 거기에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 단호한 비전 제시. 실로 완벽했다. 커빙턴은 그의 자랑스러운 콧수염을 매만지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오늘의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점이 아쉬웠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깡마른 사내가 들어왔다. 의장 쪽 사람이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는 무슨 TF 팀장 어쩌고였다. 의장이 예비책 운운하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바로 그 팀이었다. 죽어가는 행성의 묘비를 세우자고 산 자들의 자원을 낭비하는 꼴이라니. 커빙턴은 노골적인 조소를 드러내며,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당히 자상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쪽은, 그러니까…” “쇼, 시어도어 쇼입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머리는 지저분했으며, 셔츠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그는 커빙턴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의장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의장이 고개를 들어 팀장을 바라보았다. “쇼 팀장, 무슨 일이지?” 시어도어는 천천히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며칠 밤을 새운 듯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예비책의 최종안을 가져왔습니다.” - - “아무래도 좆됐다.” 마크 와트니는 혼자 좆된 거였다. 물론 그에겐 안된 일이지만, 적어도 그때는 지구에 인류가 건재했고 심지어 화성에도 한 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이대로라면 지구에도, 화성에도, 그 어디에도 한 명도 남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이 멸종의 흐름을 멈추려고, 되돌리려고, 또 늦추려고 수많은 두뇌와 손발이 역사상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어도어의 팀으로 말하자면, 어떤 면에서는 다소 패배주의적인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인류가 정말로 멸망한다면, 멸망하기 전에 뭘 해둬야 하지? 그게 시어도어가 대답해야 할 문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어도어의 미션보다는, 멸종으로 향하는 이 흐름을 멈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무총장은 멸종을 진지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였다. 시어도어의 멘토이기도 한 콜드웰 총장은 주변의 은근한 만류와 노골적인 반대를 노련하게 무시하고 그에게 충분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최고는 아니지만 괜찮은 팀을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자원은 아무래도 당장 더 급한 곳에 있었다. 괜찮은 팀의 괜찮은 팀원인 물리학자 위버 박사가 시어도어에게 한 첫 질문은 이랬다. “팀장님은 윤회를 믿으시나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박사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보세요,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인구는 계속 늘어왔잖아요. 아니, ‘거의’ 계속이요. 그럼 영혼이 어디서 새로 만들어지는 건가? 그건 그렇다 치고, 채 1년도 안 지나서 인류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그럼 이 영혼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요점이 뭡니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인류가 멸종하면 그냥 그걸로 빌어먹을 끝이라는 겁니다. 우린 여기 모여서 뭘 하는 거죠?” 또 다른 팀원인—이었던—생물학자 앤서니 박사는 이렇게 물었다. “인류가 계속해서 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멸종한다면, 그건 한 종의 끝입니다. 다른 수십만 종들의 끝처럼요.” 위버를 포함한 나머지 팀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앤서니의 생각은 팀원들에게—위버에게조차—이해받지 못했다. 시어도어는 그를 전출시켰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병마와의 전투에서 최전선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살렸다. 그리고 죽었다. - 시어도어의 사무실은 작지 않았다. 하지만 호화롭다고 할 수도 없었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책상과 의자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작은 책장이 있었지만 거의 비어있었다. 그리고 남은 자리에는 거대한 칠판, 그리고 큰 창문을 통해 사무실에 가득 내리쬐는 햇빛이 있었다. 시어도어는 그 햇빛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바닥에는 인조 양모 카펫이 깔려 있었다. 팀원들은 이 사무실에 들어올 때 실내화를 신어야 했다. 사무실은 충분히 넓었으므로, 팀원 모두가 들어와서 자유롭게 회의할 수 있었다. “저는 아무래도 우리 팀의 미션이 분명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린 인류가 멸종한 뒤에도 지속되는 인류의 의지를 설계해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단 말이죠.” 팀이 모이면, 보통 위버 박사가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그녀는 훌륭한 직관력을 가졌지만, 그 직관이 증거를 넘어선 곳에 있으면 그 불분명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애석하게도 이 팀의 미션은 계속해서 그런 상태일 운명이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그게 왜 의미가 없는지, 혹은 왜 안 되는지 따져보다 보면 우리의 답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시어도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자신도 그다지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팀원들에게는 들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런 일에 진정으로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메일로 막 쏟아지고 있죠. 거기부터 시작하나요?” 그걸 하나하나 전부 검토할 순 없었다. 대부분 비전이기보다는 추모였고, 계획이라기보다는 절규였다. 그럼에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나름의 의미는 있었다. 막연하게 줄지어 늘어선 일들이 왜 정답이 아닌지 걸러내면, 정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구체화될 것이다. “그, 왜 최근에 AI 기업들 통합했죠? 가이아¹였나? 그걸로 좀 분류해보죠. 비슷한 의견도 엄청 많을 테니까, 카테고리를 나누고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1] 가이아(GAIA, Global AI Integration Alliance):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의 AI 기업들이 통합하여 설립한 회사이자, 그 회사가 기존 모델들을 통합해 구축한 시스템. * 가이아를 돌려보자, 수천 통의 메일은 몇 개의 카테고리로 수렴되었다. 1. 인간 DNA 및 냉동 배아 등의 안정적인 보존 2. 역사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활자 수집 및 체계적 분류, 안정적인 보존 3. 오래도록 관리받지 못할 주요 유적의 소실 방지를 위한 처리. 즉 안정적인 보존 4. 특정 인물 혹은 집단의 유전자 선별 보존 5. 자신의 DNA를 연구해서 신인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 6.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우주로 쏘아 보내자는 주장 7.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검토할 가치가 없는 의견, 스팸, 스팸에 준하는 메일 ‘이런저런 잡다한 것’에는 인간의 유전자, 외계 문명에게 전하는 인사말—이 경우 사실상 유언이 되겠지만—, 지구의 문명을 압축하여 담은 데이터, 기타 상상할 수 있는 낭만적인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5번이 7번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당황스럽게도 5번과 같은 메일을 보낸, 자아가 비대한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시어도어의 팀은 5번과 7번을 제외한 나머지 주장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천문물리학자 샘과 시스템 공학자 칼, 문화인류학자 가브리엘, 발생생물학자 피위가 위버와 함께 의견을 주고받았다. “6번은 우주판 노아의 방주 같네요. 아니면 편지를 넣어 바다에 던진 유리병 같기도 하고요.” 샘의 말에 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건 다 쓸모없는 짓입니다. 전부 다 거창한 장례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겠군요.” “4번은 좀 음침해요.” 가브리엘이 말했다. “아무리 뉴에티카² 시대라지만, 이건 나치 냄새가 난다고요.” 피위가 목록을 훑으며 말했다. “모든 의견이, 인류는 멸망하지만 적어도 한 명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는 전설이다』처럼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위버가 말했다. “나는 죽지만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뒷일을 맡아줄 거다. 인류 탄생 이후로 늘 그래왔으니까.” “아니면 외계인의 방문이라도 기대하는 걸까요?” 가브리엘의 말에 샘이 대답했다. “그들이 방문한다면, ‘참 무덤을 열심히도 만들어 놨네’ 하곤 관광지 삼지 않을까요? 그건 인류 멸종을 대비한 것 치곤 너무 시시한 마무리인데요.” * [2] 뉴에티카: 멸종 위기 이후, 인간 존속을 최우선 가치로 재편한 새로운 윤리 체계. * 팀원들이 한마디씩 하는 동안, 시어도어는 햇살을 등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팀원들의 말이 맞았다. 이건 전부 인류 멸종 이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시도였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데 성공한다면 유의미한 짓인 걸까? 잠깐, 뭐라고? “뭐라고 했죠?” 팀원들은 순서 없이 서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어도어 팀장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피위 박사가 『나는 전설이다』 얘길 했잖아요. 다 죽더라도, 인간이 한 명 남는다면?” “그럼 멸종이 아닌 거겠죠.” 아니다. 이건 마지막에 어떤 두세 명, 혹은 한 명이라도, 어떤 사람이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시어도어의 머리가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위의 누군가가 아니라, 계획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면, 이 의견들은 나름의 쓸모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 유전자의 보존이 특히 그렇고, 나머지는 보너스겠군요.” “최후의 인간을 선발하시는 겁니까? 저는 지원하고 싶은데요.”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위버 박사. 인간이 한두 명만 남는다면 생물학적으로 멸종은 아니더라도 그저 멸종을 기다리는 마지막 개체가 되겠죠. 하지만 그 한 명을 잘 고르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럼 그건 멸종이 아닌데요. 저희는 그것까지 실패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건…” - 시어도어의 팀은 그들이 처음에 이해한 것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인류는 대부분 인류 자신의 잘못으로 이미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거나 멸종 위기에 빠트렸다. 일부 인간은 그 잘못을 되돌리려고 시도해 왔다. 남은 몇 안 되는 개체를 지키고, 서식지와 번식 기반을 복구하고, 인공 수정을 이용해서라도 개체의 규모를 키우는 식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인간이 관리하고 집행한다. 시어도어가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인간의 멸종이다. 인류의 멸종이라는 사건을 머릿속에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빅뱅 이전의 우주를 상상하는 것과 같았다. 다른 종이 멸종 위기를 겪을 때, 인류는 신 비슷한 역할을 해서 그 종을 살려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멸종한 종을 다시 살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멸종에서는 누가 신 역할을 해 주지? 문득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에 햇빛을 너무 오래 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우리는 멸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겠습니다.” 시어도어의 말에 위버 박사가 기특하다는 듯이 동의했다. “맞습니다. 꽤 과학자처럼 생각하시는군요.” “칭찬으로 듣죠. 우선 우리가 아는 가장 쉬운 정의는, 인간 개체가 한 명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운 건 피위 박사께 넘기죠.” “생물학적으로는 더 이상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없게 된 순간,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봅니다. 남은 개체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망 선고가 유예될 뿐이고요. 한편으론 우리가 멸종 프로토콜을 만들어두곤, 한 명이 남았으니 기다린다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그보다, 인간의 멸종은 다른 자연종의 멸종과는 좀 달라요. 인간에겐 모종의 기술이 있죠.” “맞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는 구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생명공학 기술을 잃은 열 쌍의 부부와, 그 기술을 온전히 운용할 수 있는 과학자 한 명은 인류의 존속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니까요.” “그렇다면 단순히 인간 개체수가 몇 명이 남았느냐를 세는 기준을 만들 순 없습니다. 좀 더 포괄적이어야겠군요. 인류가 보유한 기술체계까지 고려할 때,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남아 있는지를 봐야겠어요.” 시어도어가 팀원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가브리엘 박사의 말을 되풀이했다.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경로가 전혀 없으면 멸종이다. 포괄적으로는 그렇게 정의해 볼 수 있겠군요. 인간이 하나도 안 남고 모조리 사라지기 전에는 한 줌의 인간만이 남는 시점이 옵니다. 그걸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다음이 결정될 겁니다.” ‘디자인’이라는 표현에 다소 거북함을 느낀 팀원도 있었지만 굳이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한 걸음 나아갔다고 여긴 시어도어의 눈빛에 옅은 고양감이 차올랐다. 시어도어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오늘의 회의를 닫았다. “우린 마지막 당직을 서게 될 겁니다.” - 시어도어는 당분간 바빴다. 초법적인 권한 없이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는 그런 권한을 받아내기에 비교적 수월한 때다. 그의 멘토가 가진 배경과 권력은 쓸 만했다. 관료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그저 누가 뭐라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제 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군인 한 명을 옆 소대로 보내려고 하면, 다른 초법자가 막아서지 않는 한 그는 옆 소대로 옮길 것이다. - “그러면 인류가 실질적 멸종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봅시다. 개체수가 너무 적어졌든지, 어떤 식으로든 생명공학 기술을 발휘할 수 없게 됐든지, 아니면 정말로 다 죽었든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세상의 바깥에 있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역시 최후의 인간이 되는 건가요. 이 팀에 오길 잘했다니까.” 위버 박사가 농담을 했지만, 시어도어는 못 들은 것 같았다. “우리, 혹은 그게 누구든, 이 바깥에 남은 사람이 다시 세상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뭘 할 수 있어야 멸종한 인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죠?” 오기가 생긴 위버 박사의 의욕이 지나쳤다. “섹스?” 시어도어는 위버 박사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위버 박사는 무안한 듯 손사레 치며 눈을 피했다. “아니, 팀장님 한동안 바쁘시더니 너무 차가워지신 것 같길래. 아직 사람이신지 확인해보려고 농담을 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동안 표정 없이 위버 박사를 바라보던 시어도어가 옅게 미소지었다. “압니다. 앞으로도 위버 박사는 그렇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팀장님. 집중하겠습니다.” “아니, 정말입니다. 저는 이제 정답만을 향해서 달려갈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게 다 뭘 위한 건지 잊을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도록 위버 박사가 도와주세요.” 시어도어는 약간 감명받은 듯한 위버 박사의 시선을 물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어야 멸종한 인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인류의 재건은 정말 가늠도 안 되네요. 그에 비하면 사람 한 명을 살려내는 건 쉬워 보일 지경이에요. 적절한 재료와 기술만 있으면 되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봐야겠군요. 이제부터 우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멸종한 인류를 다시 번영시키는 겁니다.” - 마침내 그럴듯한 임무를 얻은 시어도어의 팀원들은 서류 속에서 인류를 살려 나갔다. 인간 한 명은 생각보다 정말 쉬운 쪽이었다. 재료는 여기저기 많이 보관되어 있었고, 중국 쪽에 숨겨진 기술과 설비도 있었다. 이른바 ‘14일 제한’³ 같은 윤리 규정은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시어도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 설비를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져올 필요는 없었고, 실제 프로토콜이 진행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팀원들이 사전에 위치와 기술을 확보하도록 했다. * [3] 14일 제한: 인간 배아를 수정 후 14일 또는 원선이 나타나는 시점까지만 체외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생명윤리 원칙. * “자, 이제 사람 한 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말 신이라도 된 것 같군요. 몇 명이나 만들어야 할까요?” 시어도어는 늘 그렇듯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선 채 대답했다. “한 명으로는 부족해요. 너무 많아도 문제고요. 6명, 많아도 8명이 적당하겠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은 아예 고려되지 않은 숫자군요. 그렇다는 건 팀장님은 이 1세대를 아담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겠군요?” “맞습니다. 첫 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을 위해 길러지고 교육받을 겁니다. 일종의 세뇌 교육이 되겠지요.” “작년만 해도 이건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작년엔 인류가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키워진 1세대는 다음 세대를 키웁니다. 세대마다 인당 6~8명 수준으로 분배하면 적당하겠어요. 세대별로 어느 수준의 세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지, 세뇌의 농도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조절해서 정상 사회로 만들지는 가브리엘 박사가 초안을 설계해 주세요.” “이들에게 자연 번식은 허용할 생각이신가요?” “아니요. 그 역시 세대가 반복되고 사람 한 명의 의미가 집단에서 흐려질 때가 되어서야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이건 피위 박사가 설계해 주세요.” - 인류 멸종 시 실행될 프로토콜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1. 인공배양으로 8명의 1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2. 1세대는 관리자들에 의해 다음 세대의 포육을 목적으로 길러진다. 불임. 3. 1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2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4. 2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을 목적으로 관리자들과 1세대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5. 2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생존한 전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3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6. 3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 노동 자급을 목적으로 관리자와 선행 세대 전체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7. 3세대가 15세에 도달하고 포육 적합 판정을 받으면, 선행 세대와 함께 3개의 거점에 나누어 배치한다. 각 거점에는 배치 인원을 기준으로 다음 세대를 배양하고 포육할 수 있는 설비와 기반 시설을 사전에 구축한다. 8. 각 거점에서 생존한 전체 가용 포육자 한 명당 8명의 비율로 4세대 인간을 배양한다. 4세대는 다음 세대의 포육과 의료 자급, 노동 자급, 농업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관리자와 선행 세대 전체가 공동으로 기른다. 불임. 9. 같은 비율로 5, 6세대를 거점 도시에 투입, 자급력을 판단한다. 생식능력은 유지하되 자연 번식은 통제한다. 10. 자급이 가능하면 배양을 멈추고 자연 번식을 시작한다. 11. 10단계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거점에서 1단계를 다시 시작한다. - 관리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계의 바깥에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섞는 순간, 그들은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된다. 차라리 신이 되는 편이 나았다. - 위버 박사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곤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네요. 하지만 마음에는 안 들어요.” “인간이 신을 흉내 내는 게 편안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아니라마다요. 마음에는 안 드는데, 목적을 분명하게 수행하는 잘 짜인 계획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드네요.” 위버 박사는 이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어도어의 눈빛은 다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인류는 알아서 다시 회복할까요? 역사를 떠올려보면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점 도시들은 각자 자기들의 신화를 가지게 되고, 다른 도시와 경쟁하게 될 겁니다. 임계점을 넘기면 경쟁은 소모전이 되겠죠.” “몇만 명의 인간이 자기 구실을 하게 두는 것만으로 우리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순 없어요. 서로를 멸망시키지 않고 더 확장해서, 자기들끼리 싸우더라도 인류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야 해요.” “신은 정말 피곤하겠군요.” “신은 우리가 이런 계획을 할 것까지 계획하느라 더 바쁠 거예요. 우린 우리 일을 하죠.” - 시어도어와 팀원들은 다음 단계로 거점 도시 간의 균형을 세밀하게 설계했다. 군사, 경제, 생산 등 어느 한쪽이 패권을 가질 수 없도록,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단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게 했다.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했고, 약한 세뇌 및 선전·선동이 아직 필요했다. 국지적인 충돌로 한 그룹이 멸망하지는 않을 수준으로 규모가 커지고 나서야 새 인류를 자유롭게 해 줄 계획이었다. - 하지만 그들이 여기까지 개입할 계획을 세우고 나니, 더 나아가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인류가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을 또 겪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멸종을 이겨내고 회복에 성공한 인류가 확장하고 번영을 이루는 데까지의 원리와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 계획의 골격이 갖춰지자,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기존의 예측 체계들은 각자의 목적에 맞춰 잘려 있었고, 국가와 기관마다 열람할 수 있는 자료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실패한 연구와 폐기된 정책, 공개할 수 없는 실험 결과는 서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팀은 가이아에 사용된 통합 분석 체계를 기반으로, 이 모든 자료를 하나의 계산 안에 넣을 수 있는 전용 모델인 티레시아스를 구축했다. 물론 시어도어의 초법적 권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 모델은 오로지 그의 팀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 팀원들은 모두 시어도어의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가득해서 햇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시어도어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서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다른 팀원들은 전부 중얼거리며 집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멸종에 대한 현실감, 신 노릇의 고양감, 인간성의 해체, 거기에 과로까지 더해 모두 묘한 광기에 사로잡힌 분위기였다. “이거면 될까요?” 시어도어의 물음에 위버 박사가 여전히 서성거리며 대답했다.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잘 짜인 시스템인데, 유연성이 부족해요.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관리자가 2~3세대를 포육하는 것까지로는 부족해요.” 잠시 생각하던 시어도어가 다시 물었다. “지금 모델에, 세습되는 관리자를 추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각 세대에서 한 명을 뽑든지, 한 명을 더 만들든지 해서요.” “보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변수만 늘어날지도 몰라요. 그리고 관리자는 이 신인류 바깥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관리자가 되면 그건 그야말로 신이 내린 황제가 돼요.” “인공지능은 어때요?” “안 되는 거 알면서 물어보시는 거죠? 팬데믹이 몇십 년만 더 늦게 왔어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관리 인력도 부족해서 모든 모델을 다 통합해서 겨우 버티고 있잖아요. 티레시아스는 괜찮지만 목적에는 안 맞아요. 종합적으로, AI는 아직 부족하고, 이대로 멸종으로 향한다면 더 좋아질 시간도 없습니다.” 위버 박사는 시어도어의 눈빛을 읽었다. 이 질문들은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팀장님, 뭔가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 거죠?” 시어도어는 위버 박사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우리는 신인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든, 아니면 부모든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더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돌봐야 해요. 이렇게 배경만 만들어 놓고 떠날 게 아니라, 그들 곁에서 직접 돌봐야 해요.” “그래서 3세대까지 기르고 교육하는 거잖습니까? 그나마도 인구가 지금 속도로 계속 줄어서 정말 곧 멸종을 해야 우리가 할 수 있고, 아니면 다른 집단을 미리 선발해야 해요.” “다른 집단이 우리의 계획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인류에게 추앙받는 걸 즐기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면요? 지금 당장 인류를 멸망시키고 프로토콜을 진행할까요?” 위버 박사가 농담했지만, 시어도어는 이번에도 웃지 않았다. “우린 시스템을 아주 잘 짜뒀어요. 이 시스템이 왜곡되지 않게 할 버팀목이 필요해요. 신인류의 입장에서 이 계획을 집행하는 건 엄청난 권력이고, 권력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조종해 시스템을 오염시킬 겁니다.” “그만 빙빙 돌리시고,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게 뭔데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나은 대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요.” “팀장님, 이 계획을 지금 당장 실행한다고 해도, 3세대가 태어나는 건 30년 뒤예요. 4세대가 그나마 우리가 운이 좋으면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예요. 우리는 멸종 프로토콜이 성공하는지 살아서 확인할 수 없어요. 결국엔 우리 손을 떠난다고요.” “나는 그게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말했듯이, 아이에게 우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우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불로초라도 찾으러 다니시게요?” 위버 박사는 초조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농담을 던졌지만, 시어도어는 끝내 웃지 않았다. “필요하다면요. 이 계획이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존재해야 해요.” - “말도 안 돼요.” “그건 예상한 반론입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반론이 없으면 진행하죠.” 시어도어는 이제 눈가리개를 한 경주말 같았다. “아니요, 팀장님. 기다려보세요. 우리가 지금까지 짠 계획만으로도 이미 신 놀음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정말 신이 되시려고 그래요?” “신이 될 생각 없습니다. 책임을 다하려는 거지요. 다들 ‘이럴 거면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느냐’는 질문, 해 본 적 있지 않습니까? 신인류가 그 질문을 던질 때 답해주려는 거예요. 더욱이, 정말로 이들은 다른 존재, 즉 우리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태어나게 됩니다. 그들이 존재론적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이 계획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무려 세뇌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계획을 그들 스스로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끔찍한 짓은 계획에 넣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것만 믿고 있을 순 없어요. 그게 잘못되면 기껏 살려낸 인류가 다시 자멸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실패에 스스로 대비할 수도 없어요. 그렇게 된다면, 그냥 인간 몇 쌍을 만들어서 지구 여기저기 흩뿌려두고 인류가 다시 번성하길 바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비약이 심하시네요 팀장님…” “비약이 아닙니다.” 입을 꾹 닫고 눈으로만 회의를 좇던 칼 박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비약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프로토콜과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일관된 관리자가 필요해요.” “일관된 관리자라.” 위버 박사가 초점이 없는 눈을 한 채 칼의 말을 되풀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된 숫자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방 안에—아마 바깥 어디에도—없었다. 이들이 만든 프로토콜은 크게 4단계로 나뉘었다. 멸종, 회복, 확장, 그리고 번영. 각 단계의 인구, 기반시설 등 지표의 기준이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프로토콜이다. 멸종 단계만 해도 그들의 남은 생 안에 완수될 수 없었다. 회복과 확장은 그다음 일이고, 번영은 단지 인류가 다시 80억 명에 이르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계획대로 그 단계에 돌입한다고 해도, 정말 그런 사회가 만들어진 건지 확인하는 데는 도대체 얼마나 걸릴까?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일관된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가브리엘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건 다른 얘기예요.” “다르지 않습니다.” 시어도어가 대답했다.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과 계획에 책임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의 목적을 설명할 순 있지만 책임을 물려줄 순 없어요.” “후계자를 교육하기로 했잖아요. 우리가 충분히 교육해서 그들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길 바란 계획 아니었나요? 적당한 시점에 과거의 유물은 빠지고 새 시대의 새 인류에게 바통을 넘기기로 한 건 줄 알았는데요.” “정확해요. 다만 적당한 시점이란 게 우리의 생을 한참 넘어선 때라는 걸 깨달았을 뿐입니다.” “이건 도대체…” 시어도어는 가브리엘의 말을 끊고 계속 말했다. “후계자의 후계자는 누가 가르치죠? 그 후계자는요? 세대를 거치며 계획은 계속 새롭게 해석될 겁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예외로 시작하겠죠. 그 예외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계획을 더 잘 이해했다고 믿을 겁니다. 그게 단지 자신들 소수 몇 명의 기득권에게 더 좋은 일일 뿐이라는 걸 자각조차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결국 이 계획은 방향을 잃고 좌초하게 될 겁니다.” “그게 문제라면 여러 집단으로 나누면 됩니다.” 샘이 말했다.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이 모든 권한을 갖지 않게 하는 거예요. 권한을 분산하고, 상대방이 계획을 왜곡하는지 감시하게 하는 거죠.” “그 집단들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면요?” “합의를 해야겠죠.” “합의하지 못하면?” “염병할 다수결이라도 하겠죠.” “바로 그 순간 계획은 정치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치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지 못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토콜의 회복 단계에서도 비슷한 걸 하잖아요?” “달라요. 그건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거고, 이건 그보다 높은 차원의 문제예요. 우린 빌어먹을 신 놀음을 하고 있죠. 삼권 분립이 실현된 신화가 있다는 얘긴 못 들어봤어요.” 피위 박사가 한쪽 벽에 기대어 물었다. “정말 신이 되시겠다고요? 정말로 신처럼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겠다는 겁니까?” “영원이라는 말은 부정확해요. 계획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동안입니다.” “그게 영원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영원이어야겠죠.” 시어도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칠판으로 다가가 수식과 문장들을 아무렇게나 지우곤 점을 하나 찍었다. “우리.” 그 점에서 오른쪽으로 1m쯤 옆에 점을 하나 더 찍었다. “번영.” 두 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건 계획이 아니에요. 소원이지.” “계획으로 만들어야죠.” “대체 어떻게요?” 분필을 내려놓은 시어도어가 대답했다. “그 방법을 찾는 게 우리 일입니다.” -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시어도어는 팀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이 계획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책임을 다하기 싫은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만든 것은 완벽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그저 끔찍하기만 할 뿐이었다. 시어도어의 다소 급진적인 주장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들 모두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를, 정말로 진실되게 책임지고 싶었다. 시어도어의 시선을 외면하던 피위 박사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입을 열었다. “노화를 막는 연구는 이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성공할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어요.” “장담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피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시어도어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연구 지시를 내리는 건지, 종교적 계시를 내리는 건지 판단하려는 표정이었다. 위버 박사가 칠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떤가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동일한 집행자가 계획 전체에 걸쳐 존재할 수 있느냐.” “그게 다른 질문인가요?” “영생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죠.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계획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거예요. 모든 시간을 연속해서 경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거예요.” “냉동인간을 말하는 건가요? 그건 안 돼요. 공식적인 연구뿐 아니라 비공식적이고—구세계 기준으로—비윤리적인 연구도 싹 뒤져봤지만 성공에 가까운 것도 없었어요.” 피위 박사는 이미 티레시아스를 이용해 알아봤던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하지만 위버 박사는 그 얘길 하려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샘이 고개를 들었다. “상대론적 항해.” 위버가 다시 되풀이했다. “상대론적 항해.” 시어도어가 위버를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항해하면 외부보다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광속에 가까우면 유의미할 정도의 차이가 나죠. 이건 상용화되지 않았고 유인 우주선으로 실험한 적도 없지만, 기술 자체는 존재합니다. 미국이랑 중국이 가진 걸 잘 섞으면 돼요.” “집행자들을 교대로 보내면 되겠군요. 계획이 안정될수록 우리가 개입해야 할 간격은 늘어날 거예요. 점점 더 멀리 다녀오면 되겠네요.” “항해 중 사고가 나면요?” “여러 척으로 나눠서 보냅니다.” “우주 항해는 좋은 우주선 한 척 가지고 하는 게 아닌데요. 지구 쪽에도 기술이 있어야 해요.” “귀환 시점에 맞춰 기반과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해야죠.” 샘은 대답하긴 했지만 자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상대론적 항해는 시간을 이기는 방법이라기보단 시간으로부터 잠시 도망치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돌아올 장소가 사라지면, 그들은 그저 인류가 두 번 멸종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이 될 뿐이었다. “그래도 해 볼 만 합니다. 집행자의 시간을 분산시킬 수 있어요. 지상에 남은 시스템과 독립된 예비 관리자도 확보할 수 있고요.” 시어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하세요.” “상대론적 항해를요? 아니면 불로초 찾는 걸요?” “둘 다요.” - - 한 치의 구김도 허락하지 않는 슈트 차림의 윌리엄 커빙턴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정갈한 콧수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단지 저 나이 많은 의장만은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예리한 시선으로 꿰뚫어보건대, 저 노인은 심지어 일말의 만족감을 보이고 있었다. 늙은 여우 같은 교활한 노친네. 늙은 여우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시작하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멸종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고, 확실시되면 바로 프로토콜을 가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멸종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커빙턴이 말했다.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입니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지적할 필요 없네.” 의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 계획은 인류가 멸망하면 실행될 걸세. 실행되는 날에는 반대할 사람도 이유도 남아 있지 않겠지.”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 쓰일 어마어마한 예산은요? 또 인력은? 지금 당신들은 절망에 휩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역병 따위가 아니라…” “호흡기 질환일세.” “예?” “호흡기 질환이라고, 이 전염병들은. 자네 식으로 표현하자면 ‘숨결을 타고 침입한 역병’쯤 되겠군.” 두 번째 일격이 뜻밖의 순간에 모욕적으로 저지되자, 커빙턴은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우린 반년 만에 절반을 잃었네. 이 속도라면 우린 정말로 멸종될 걸세. 준비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그걸 준비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나? 예산 따윈 문제가 아닐세. 물론 멸종을 막는 게 최우선이지. 그걸 막지 못했을 때 그대로 끝장나느냐, 다시 부활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넨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커빙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짓거리였다. 이 미친 짓거리에 계속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입을 꾹 닫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으로 향했다.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의장이 커빙턴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이 회의의 모든 세부 내용은 기밀입니다. 모험에 나서는 이가 없길 바랍니다.” 윌리엄 커빙턴은 고개를 돌려 의장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 미소를 짓고 있다고 믿었다. “무슨 세부 내용 말씀이신지? 저는 오늘 들은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만.” - 〈커빙턴 장관, 사무총장의 결단 촉구〉 《뉴욕 타임스》 발췌 윌리엄 커빙턴 장관이 감염병 사태에 대한 국제기구 사무총장의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현 지도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커빙턴 장관은 어제 오후 집무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조심스러운 관찰자도, 실패를 설명하는 유능한 기록자도 아니다”라며 “폭풍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회의록의 문장이나 다듬고 있는 자에게 선장의 자리를 맡겨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그는 “이것은 질병 하나와의 싸움이 아니”라며 “숨결을 타고 침입한 역병이 폐부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공포는 거리로 번지고 무기력은 국가의 심장부를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인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위험이 저절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지도부의 마비된 의지”라고도 덧붙였다. …… 커빙턴 장관은 인터뷰 내내 현 지도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자신이 사무총장직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잠시 침묵한 뒤 “지금 개인의 영달을 논하는 것은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왕관의 무게를 재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위기 수습을 위해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 권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책임이 나를 요구한다면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인류가 나의 이름과 시간과 명예, 나아가 목숨까지 필요로 한다면 남김없이 내놓을 것입니다. 창공을 가르는 매가 폭풍을 두려워해 날개를 접지 않듯, 역사가 우리 세대에 부여한 의무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 에드먼드 콜드웰 유엔 사무총장실은 커빙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총장실 관계자는 다만 “각국 및 전문기관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필요한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며 “개별 인사의 정치적 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윌리엄 커빙턴 장관, 감염병으로 사망…향년 57세〉 《뉴욕 타임스》 유엔 사무총장의 위기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윌리엄 커빙턴 장관이 감염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커빙턴 장관실은 그가 지난주 감염 사실을 확인한 뒤 관저에서 치료를 받던 중,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어젯밤 숨졌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감염 경로나 치료 경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자와 두 자녀를 남겼다. 장례 절차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 - 시어도어의 팀은 이제 두 가지 미션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계획보다 먼저 죽지 않을 집행자를 만드는 일, 그리고 집행자의 일부를 시간의 흐름 바깥으로 보내는 일. 상대론적 항해 계획은 빠르게 거대해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몇 번의 시험 비행이 성공했다. 그러자 팀원 몇 명을 태운 항해선이 지구를 떠났고, 광속에 가까워졌을 무렵 신호가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돌아오는 길 자체를 잃어버린 것인지,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잠정적 실패로 기록되고, 계획은 중단되었다. 다른 한편, 지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찾던 팀원들은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성공을 거듭했다. 세포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속도를 줄이거나, 결국 낡아서 못 쓰게 될 장기가 있던 자리는 유지 보수만 잘 해주면 계속 쓸 수 있는 기계 장치가 대신했다. 어떤 방법은 환자를 젊게 만들었고, 어떤 방법은 젊은 시체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팀원은 수술대에서 죽었고, 어떤 팀원은 바뀐 몸으로 오래 버티지 못해 죽었다. 시어도어는 어찌 되었든 죽지 않는 쪽에 가까워져 있었다. 재현되기 어려운 성공이었고, 성공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성공이었다. 많은 것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많은 것을 다시 채워 넣었다. 다만 계획에 대한 책임만은 덜어내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시어도어 쇼 자신이었다. - 콜드웰 사무총장은 꽤 오래도록 살아남은 편이었다. 병상에 누운 그는 시어도어를 불러들였다. 어차피 시어도어의 폐는 이제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있었다. 사무총장은 자신의 멘티에게 자신이 쓰던 만년필을 건넸다.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만년필이었다. “자네가 맡아주게.” 시어도어는 만년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적임자라고 확신하십니까?” 사무총장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같은 때에 확실한 건 없지. 믿을 뿐이네.” “무책임하군요.” 시어도어는 만년필을 받아들었다. - 〈시어도어 쇼, 유엔 사무총장직 승계〉 《뉴욕 타임스》 유엔은 전임 사무총장의 사망에 따라 시어도어 쇼 사무차장이 사무총장직을 승계했다고 밝혔다. 총회 표결은 열리지 않았다. 유엔 측은 현재 활동 가능한 회원국 대표들의 묵시적 동의 아래 쇼 사무총장이 비상 체제와 인류 존속 계획을 지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 〈신규 감염·사망 12주 연속 감소…“최악의 국면 지났을 가능성”〉 《뉴욕 타임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신규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12주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주요 도시에서는 임시 치료소와 격리 구역 일부가 폐쇄되기 시작했으며, 중단됐던 교통망과 필수 생산시설도 제한적으로 재가동되고 있다. 다만 감시 체계가 붕괴한 지역이 여전히 많아 감염병의 종식을 선언하기에는 이르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인류가 대유행의 마지막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감염병 사망자 100일 연속 ‘0’…세계 인구 감소세 멈춰〉 《뉴욕 타임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병으로 인한 신규 사망자가 100일 연속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난 이전의 약 10%까지 감소한 세계 인구는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인류가 장기적인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면서도, 붕괴한 사회 기반과 극심한 인구 불균형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수십 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 시어도어는 사무총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집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어차피 남는 방은 넘쳐났다. “티레시아스.” “예, 사무총장님.” “30년 안에 멸종 프로토콜의 실행 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3.7%입니다.” “10년 안에는?” “1.4%입니다.” 시어도어는 큰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뒤 티레시아스에게 다시 물었다. “현존 인류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나?” “회복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4단계 프로토콜의 정의를 사용해.” 티레시아스는 공개된 모든 자료와, 자신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비밀스런 자료를 사용해 계산했다. “정량적으로는 프로토콜상 회복 단계 돌입 기준을 충족합니다. 다만 프로토콜의 기준은 신인류를 대상으로 합니다. 현존 인류는 포육이 통제되지 않았고 세뇌도 받지 않은 집단입니다.” “현존 인류의 자력 회복 가능성은? 정의상 확장 단계로 100년 안에 도달할 확률을 계산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37.4%입니다.” “현존 인류에게 곧장 회복 프로토콜을 실행하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54.4%입니다.” “현존 인류를 프로토콜 조건에 맞추는 작업을 병행하면?” “100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98.7%입니다. 48년 안에 회복이 완료될 가능성 90.2%입니다.” - 인류는 다른 종과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었고, 파괴를 막을 수도 있었다. 시어도어의 팀은 심지어 인간이 멸종한 뒤에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방법과 단계를 고안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검토했다. 거의 전부 필요했고,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계획의 중심에는 시간을 넘어 동일한 책임을 유지할 존재가 필요했다. 그 존재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 당직자였다. -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시어도어는 마침내 눈을 뜨고 티레시아스에게 알렸다. “회복 프로토콜을 실행한다.” - - 도현은 이서와 함께 나우바에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소란으로 망가진, 도현이 제일 좋아하던 의자를 대신해서 사장님이 새로 구입한 의자였다. 네안의 신체 규격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도현의 몸에 잘 맞는 의자를 구해줘서 도현은 흡족했다. 둘은 맥주를 마시며 신임 UN 사무총장의 디코이가 취임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저 디코이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저 연설이나 직함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 사실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늘 그래왔던 일이지만, 도현은 문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 같은 얼굴을 굳이 왜 만들어내야 하지? 어차피 얼굴을 안 드러낼 거면 그냥 대리인이 말하거나 글로만 발표해도 되지 않나?” “선배, 심리학 공부도 좀 해요.” 더 물어볼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찾아보지 뭐. “하지만 저 사람은 이름도 없잖아.” 이서가 화면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되게 오랫동안 같은 사람이 연임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디코이만 갈아치우면서요.” “얼마나?” “아무도 모르죠.” 화면 속 얼굴은 신뢰할 만한 표정을 지으며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약속했다. “UN은 자세한 얘길 안 해주니까요.”
EP #3. 플래니모
EP #4.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10/12 공개
언제나와 같이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기꾼을 잡고, 방범 순찰을 돌고, 싸움을 말리고—양쪽 다 구속했다—, 고양이를 찾아줬다. 할머니의 푸념도 꽤 길게 들었다. 옛날, 그러니까 멸종위기를 겪기 전의 세상에선 경찰의 업무분장이 더 잘 되어 있었다고 들었다. 할머니의 푸념만 전담으로 들어주는 일은 오히려 더 고될 것 같기는 하다. 사흘째 퇴근하지 못한 채 근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기꾼 체포에 대한 보고서를 마무리한 도현은 커피를 한 잔 들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참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낯익은 자가 서 있었다. “…해서 그 경찰분을 좀 뵙고 싶은데요.” 며칠 전 나우바에서 난동을 부린 그 미친, 아니 주취자 네안이었다. 멀끔하고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도현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이 덩치 좋은 사내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죠. 그런데 어쩐 일로?” “어…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예 그러시죠. 커피?” 둘은 잠시 뒤 각자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주차장 벤치에 앉았다. 하늘은 아주 파랗고 높았다. 무진은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명함을 건네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박무진이라고 합니다. 대형유물 보존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유물 보존사는 거대한 석상이나 오래된 기계처럼, 무겁고 망가지기 쉬운 것들을 복원하는 직업이다. 주로 네안 중에서도 섬세한 자가 이 일을 한다. 며칠 전의 난투까지 생각하니, 도현의 눈에 들어온 이 풍경 안의 모든 요소가 각자 자기주장을 하며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네, 저는 김도현 경위입니다. 하실 말씀이란 게?” “며칠 전 일은…” “사과는 이만 됐습니다. 아시겠지만 저희가 인력이 모자라서요. 항상 바쁩니다. 괜찮으시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도현이 불쑥 말을 끊자, 무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네,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릴 수밖에 없군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그날은 제 애인과 바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네,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애인이 요즘 좀 이상했거든요. 뭐랄까, 어딘가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락이 안 되는 일도 잦아지고, 갑자기 출장이라며 며칠씩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도 했고요. 그녀의 직업은 그렇게 출장이 많은 일은 아니거든요.” 바쁘다고 이미 한 차례 거리감을 뒀지만, 연애 상담을 해 줄 마음은 정말로 없는데. 한숨을 살짝 내쉬자, 무진은 도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사적인 고민을 나누려던 건 아닙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제 애인이 실종되었습니다.” 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실종이라고요? 근거가 있습니까? 상대방의 인생에서 그냥 사라지는 방식으로 이별을 고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니까 선배 말은, 꼭 애인분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그렇죠 선배?” 어느새 이서가 둘의 곁에 와 있었다. 이서가 이렇게 불쑥 끼어드는 건, 보통 도현이 뭔가 말실수를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선배 말뜻은 그게 아니라,’하는 식의 해명이었다. 처음에는 도통 왜 그러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며 도현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이서가 이렇게 끼어들면, 그냥 이서의 말을 인정하면 됐다. “예, 뭐 그렇습니다. 이쪽은 제 파트너인 서이서 경위입니다.” “안녕하세요, 전에 나우바에서 뵈었던 분 맞죠? 엿들으려던 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파트너시면 같이 수사하시게 되는 것 아닌가요?” “실종이라는 근거가 있다면 말이지요.” 이서는 파트너의 완고함에 입술을 앙다물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다가, 실종이라면 왜 굳이 저를 찾아오신 거죠? 정식으로 신고하지 않으시고요.” “사람들은 네안의 실종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숨었다고들 생각하곤 하죠. 심지어 경찰들도요.” 사실이다.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네안이 숨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럼 아는 네안 경찰이 저밖에 없어서 제게 오신 거겠군요.” 박무진이 가볍게—한쪽 입술로만—웃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저를 두들겨 팬 경찰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찾아왔겠습니까?” “그건… 아니겠죠.” “저는 사람 보는 눈이 꽤 좋습니다. 첫인상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웬만큼은 알 수 있어요.” “술에 취해 있더라도요.” “술에 취해 있더라도요. 게다가 결국엔 술이 깨지 않았습니까? 제게 해 주신 말들을 기억합니다. 대단히 인상적인 말씀이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경위님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던 이서가 또 장난스레 끼어들었다. “선배, 저는 이분 마음에 드는데요. 드디어 선배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분이 나타나셨어요.” “꿰뚫리기 싫으면 입 다물어.” 박무진이 초조한 듯 두 사람을 바라보자, 이서가 얼른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장난치시는 거예요. 그나저나 애인분 실종 관련해서 무슨 단서 같은 건 따로 없으신가요?” 장난친 거 아니었다. 하지만 무진은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구겨졌다 펴진 흔적이 역력한 종잇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서둘러 집을 정리하고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대체로 잘 치운 것 같았지만, 버려진 메모가 하나 있었습니다. 보세요.” 잉크가 다 됐는지 펜이 나오다 말다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략의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제가 이미 찾아가 봤는데, 웬 낡은 책방이더라고요. 중년쯤 돼 보이는 네안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도현은 그 말을 듣자 메모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가까스로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무진에게 말했다. “저희는 사립 탐정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경로로 신고를 접수하시죠.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도현은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현기증이 났다. 은행잎이 발에 채였다. - “도현아. 잠깐만 나와볼래?” 수업 중 갑작스러운 방문자를 맞이하고 돌아온 선생의 표정이 묘했다.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더 먼 곳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이 선생의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현은 어리둥절한 채, 어정쩡하게 일어나 교실 밖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학생들의 눈길이 뒤통수를 쫓아오는 것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교실 문을 나섰다. 사춘기 중학생들 사이에서 이 반의 유일한 네안인 도현은 평소에도 노골적이고 집요한 관찰의 대상이 되곤 했다. 도현은 시선을 무시하고 선생을 따라 복도로 향했다. 선생은 여전히 도현을 보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녀와 도현의 시선 중간 어디쯤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불쌍한 것을 어떡하면 좋아, 하는 생각이 정직하게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워질 때쯤 선생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 도현아. 너희 부모님이…” -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이 없는 아득한 허공으로 한 걸음씩 추락한다. 아무것도 도현을 붙잡아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깊이 더 깊이 가라앉는다. 고개를 들자 태양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시야의 바깥에서부터 안쪽을 향해 점점 어두워져 간다. 노란 은행잎들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도현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시시덕대는 사람들,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람과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재잘대는 아이들 사이를 계속해서 지나쳐 걸어갔다. 그 모든 것이 태양과 함께 도현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인지, 자신이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도현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으로 바닥이 솟아올랐다. 아니, 넘어진 건가? 사람들이 다가와 뭐라뭐라 말을 했지만 말소리도 도현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도현의 눈을 덮었다. - “...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도현은 은행잎을 발로 짓이기고 있었다. 옆에는 이서가 와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선배?” “어. 왜.” “왜는 무슨 왜. 갑자기 정색하고 일어나서 비틀거리더니 여기 와서 은행잎 즙을 짜고 있잖아요.” “다 말라서 즙은 안 나와.” 은행잎 얘기 맞아? 도현은 자기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아직 정신이 조금 멍했다. “선배 지금 퇴근 안 한 지 며칠 됐죠? 자잘한 건 제가 정리할 테니까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쉬세요.” “그래, 고맙다.” - 집에 돌아온 도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퇴근길에 신호를 다 지켰던가? 집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린 거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혼자 살아가는 것. 그게 세상을 살아내는, 유일하게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된 지 오래다. 그걸 알게 된 뒤론 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런 줄 안 지가 오래돼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준비도 없이 강석의 흔적을 마주치자, 단단해 보였던 도현의 귀퉁이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 도현은 장례지도사가 건네준 상복을 입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상복은 적당히 급하게 준비된 거라 체형에 잘 맞지 않았다. 도현의 몸통 두께에 맞는 어른 사피엔스의 옷을 입으면 팔다리가 길었다. 셔츠와 바지를 깔끔하게 걷어 올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호리호리한 경찰이 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주고 갔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절벽과 함께 통째로 무너져내렸다니. 시신조차 찾을 수가 없다니. 대단한걸. 올해의 다윈상 후보가 되겠어. 아니, 그러게 산은 도대체 왜 오르는 거야? 등산이 재밌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산 중턱에서 백숙을 먹을 때가 그나마 유일하게 즐거운 순간이었고, 그걸 먹고 다시 내려가는 게 아니라 더 올라가는 게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닭이 산짐승도 아닌데 산이랑 백숙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도현의 생각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의 후견인격인 사피 과학자가 있었는데, 가끔 도현까지 넷이 식사를 하거나 하면 그녀는 마치 가족인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떠난 자리에 나타나진 않았다. 그냥 붙임성이 좀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부모님의 직장 동료 몇 명이 다녀가긴 했는데 전부 네안이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피엔스는 도현의 담임선생님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오래 앉아 있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가 아는 한 그의 부모는 사교성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빈소에 혼자 앉아 있는 처지를 보아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른들의 사교성이란 또 다른 모습인가 보지. 그렇더라도 강석 삼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이상했다. 그는—그 후견인과는 달리—진짜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성격이 좀 퉁명스럽긴 해도, 도현에게 첫 자전거를 선물해준 것도 강석이었다. 네안이 타도 무리 없는 내구성을 가진 자전거는 꽤 비쌌다. 강석은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도현이 그 자전거를 처음으로 혼자 탈 때 뒤에서 밀어준 사람도 아버지가 아니라 강석이었다. 도현의 부모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마지막 네안 세대였다. 그들에게는 형제나 다른 가족이랄 게 없었다. 도현이 의지할 곳은 이제 강석뿐이었다. 그는 마땅히 여기에, 도현 옆에 있어야만 했다. 기댈 곳이 없어 도현은 자꾸만 쓰러졌다. - 도현은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도현은 계속해서 달리고, 추락했다. 별안간 벼락이 치더니, 도현이 허우적대던 허공은 물로 채워져 도현의 턱끝까지 차올랐다. 도현은 떠내려온 널빤지를 부여잡았다. 겨우 숨을 고르자 도현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방금까지 가득하던 물은 다 없어지고 널빤지는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반대편 언덕에 강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삼촌을 부르고 싶었지만 언덕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물이 다시 차오르더니, 언덕은 섬이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태양이 빠르게 가까워지며 어느새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도현은 문득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났다. 블라인드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눈을 때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난 도현은 출근 준비를 했다. 간밤의 꿈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 “접수됐어요.” “뭐가?” “이미현 씨 실종신고요.” “그게 누군데?” “박무진 씨 애인이요.” 도현은 어처구니가 없어 이서를 처음 보는 물건처럼 쳐다봤다. “선배가 정식으로 접수하라고 했잖아요? 박무진 씨가 접수했고 우리한테 배당됐어요.” “왜?” “뭐 고양이는 이유가 있어서 찾으러 다니셨어요? 접수되면 하는 거죠 뭐.” 그렇긴 했다. 하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알았어. 단서는?” “어제 봤던 그 메모랑, 이미현 씨 직장이랑 자주 가던 곳들 리스트를 받아놨어요. 오늘은 밀린 건들부터 좀 쳐내고, 내일 하나씩 가 보죠.” - 다음 날 두 사람은 리스트에 올라온 곳들을 돌아봤지만, 이미현은 평소에 그리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특히나 사피엔스들은 네안 얼굴을 아주 잘 구분하지는 못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그들은 이제 나우바에 도착해 있었다. 퇴근한 건 아니었고, 나우바도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6시에 오픈합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사장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알아요.” 그제야 사장님의 얼굴이 바 테이블 위로 나타났다. “너희구나? 이 시간에 웬일이니?” “땡땡이. 사장님 나 맥주 한 잔만 주세요.” “땡땡이 아니고 일하는 중이에요. 맥주 주지 마세요.” 맥주잔은 이미 이서 손에 들려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광경에 도현은 더 이상 잔소리할 의욕조차 잃었다. “사장님, 손님 중에 이 사람 기억나시죠?” 도현이 이미현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어, 꽤 자주 오던 여잔데. 한 달에 한두 번은 왔어.” 어느새 도현의 손에도 맥주가 들려 있었다. “논알콜이야. 운전해야지?” 운전은 원래 이서가 한다. “이 사람을 찾고 있어요. 실종됐대요. 저번에 여기 다 부순 네안 있죠? 그때 기다리던 그 사람 애인이래요.” “아 무진이? 저번에 과일이랑 뭐랑 잔뜩 들고 사과하러 왔었어. 그 사람이 애인이래? 실종됐다고? 그땐 그런 얘긴 없었는데.” 언제 말까지 놓으신 건지. 이 양반의 친화력은 어떻게 봐도 늘 놀랍다. “뭐 좀 나름대로 알아보고 그랬나 봐요. 결국 실종신고를 접수해서 조사하고 있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은 꼭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 골라서 앉는 거 알지? 그 사람은 저쪽 자리에 주로 앉았어. 아마 무진이랑 같이 온 적은 없고, 주로 혼자 아니면 다른 네안 한두 명이랑 왔던 것 같은데.” “어머, 바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 여자랑 올 때도 있었고.” 도현은 그 자리를 살폈다. 손님들이 낙서해둔 코스터가 그대로 깔려 있었다. “사장님 근데 이거 이렇게 막 낙서해도 돼요?” “뭐 어떠니,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재밌잖아?” 재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코스터를 훑어봤다. 취해서 낭만이 올라온 사람들은 뭘 자꾸 끄적였다. 시를 한 구절 적어둔 것도 있고, 그림을 그려둔 것도 있었다. 이 사람은 위스키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군. 여길 몇 번은 와야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이 술집의 정확한 이름은 〈Now or Never〉였다. 사장님이 간판 디자인할 때, 이름은 쓰고 싶은데 너무 길어서 ‘Now’만 크게 쓰고 ‘or Never’는 밑에 주류 메뉴와 같은 줄에 적었다고 했다. 취하기 전에 발견하면 다소 이상한 부분이긴 했다. 취하면 다 상관없지만. “이미현 씨도 낙서를 했으려나? 혹시 모르니까 그냥 사진만 좀 찍어 갈게요.” 그때 출입문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6시에 오픈합니다.” 사장님은 여전히 입구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도현은 입구를 봤다. 복면을 쓴 네안 둘이 서 있었고, 그들도 도현을 봤다. 기세 좋게 밀고 들어온 그들은 당황한 듯 서로의 눈과 도현의 눈을 번갈아 마주쳤다. 도현이 사태를 막 파악하는 순간 이서가 순식간에 권총을 빼들고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야, 너희 뭐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마주한 두 네안은 이서의 외침을 신호 삼아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도현도 따라 나섰다. “경찰이다! 거기 서!” 이서가 외쳤지만 밖으로 나가 보니 그들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아니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이 대낮에 강도질을 하려던 거야? 그것도 나우바에서?” “어디로 가는지 봤어?” “아니요, 진짜 빠르네 이 새끼들.” “걔들도 많이 놀랐나 보지. 놓쳤으면 일단 둬. 서에 연락해서 주변 순찰 좀 돌려달라고 하고, 우린 다시 올라가보자.” 가게로 돌아오니 사장님은 의외로 평온했다. “사장님, 안 놀라셨어요?” “놀랐지. 어떻게 안 놀라.” “그런 것 치곤… 침착해 보이시네요.” “니들 유비무환이라는 말은 아니?” “에?”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대비를 하고 계셨다는 건가? 다음 순간 도현은 사장님의 말뜻을 이해했다. 사장님은 바 아래서 꺼낸 샷건을 들고 있었다. “와. 그 정도로 준비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사장님.” “나는 술집 여사장이잖니. 여기 오는 사람들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강해야 한단다.” “그럼 전에 박무진 씨 사건 때도 저희 부르실 필요 없었겠는데요?” “얘는. 무슨 술주정 좀 부린다고 총을 꺼낼 순 없잖니.” “아까 걔들은 결국 우리 덕에 목숨 건졌네요. 오픈 전이라 손님 없을 줄 알고 왔나 보다. 사장님한테 샷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거고. 근데 그 총 등록은 하신 거죠?” “당연하지. 흠 잡힐 짓은 안 해.” “걱정은 안 되는데 걱정되네요. 몸조심하세요. 순찰도 늘릴게요.” - “이제 이 책방만 남았네요. 괜찮겠어요?” “뭐가?” “그때 이 주소 적힌 메모 보자마자 사색이 돼선 길 잃은 불독이 됐잖아요.” 불독? “문제 없어.” 문제 있었다. 이서 혼자 다녀오라고 할까? 하지만 왜? 그는 강석에게 빚진 게 없었다. 배신자는 강석이고 도현은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이 참에 아문 줄 알았던 상처와 마주하고 결판을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갈게. 너는 서로 복귀해.” “저 맥주 마셔서 운전 못 하는데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뻔뻔함이다. 분명 마시지 말라고 경고도 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정 그러면 저는 차에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술 냄새 풍기면서 사무실로 돌아갈 순 없잖아요.” “그러게 애초에 마시지 말라니까?” “이미 마신 걸 어떡해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이제 수습을 잘하면 되죠.” “조수석에 앉아서 기다리는 게 수습이냐?” “자꾸 몰아세우지 마세요. 사실 난 선배 여기 안 갈 줄 알고, 나우바까지만 갔다가 현장 퇴근할 계획이었단 말이에요.” “하. 계획이 있으셨다.” “오래된 격언이 있어요.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이라고 전설적인 복싱 선수가 한 말인데. 근데 마이크 타이슨이랑 선배랑 붙으면 누가 이기려나? 서로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도현은 어이가 없어 더 말하지 않았다. 이서는 깔깔대고 웃었다. 도현은 자신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가려는 걸 붙잡아 내리며 메모를 다시 펼쳤다. 강석. 입꼬리는 이제 억지로 끌어내릴 필요 없었다. - 장례가 마무리될 때까지 강석 삼촌은 나타나지 않았다. 장례는 5일장으로 진행되었다. 인류 멸종 위기 이후, 사람들은 고인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급히 수습했던 것에 미안함과 회한을 가졌다. 전염병의 기세가 꺾이자, 사람들은 지난날을 보상하듯 장례를 길게 치르기 시작했다. 일주일까지 늘어났던 표준 장례절차는 이제 다시 5일로 줄었다. 하지만 도현에게는 그것도 너무 길었다. 조문객이 별로 없어 혼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 시간 내내 부모의 죽음을 다시 자각해야 했고, 강석 삼촌을 기다려야 했다. 영원 같은 닷새가 지난 뒤, 강석에 대한 도현의 기대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뀐 것은 당연했다.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자마자, 도현은 강석의 책방으로 찾아갔다. 그는 뻔뻔하게도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살짝 넋이 나간 듯한 눈빛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삼촌에 대한 기대가 그 흐리멍텅한 표정을 읽고 싶은 대로 읽은 것이리라. “뭐예요, 삼촌?” “뭐냐니.” “장례식장에서 이제 막 나왔어요. 화장할 시신도 없는데 거기엔 삼촌도 없었죠. 난 혼자 거기서 뭘 한 거죠?”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도현은 바깥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리키며 강석에게 따져 물었다. “삼촌이 사 준 저 자전거 타고 왔어요. 삼촌은 우리 엄마 아빠랑 친구 아니었어요? 난 삼촌을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이라는 것도 별 거 없다. 난 좀 바빴어. 미안하구나.” “미안하긴 해요? 바빴다고요? 뭘 하느라고? 이깟 낡은 책들 읽느라?” 도현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내리쳤다. 비스킷처럼 힘없이 부서진 책장 아래로 책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강석은 잠시 움찔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삼촌은 거기 있었어야죠. 내 옆에 있었어야죠. 지금이라도 마땅히 날 위로해 줘야죠.” “도환이와 지현이는…” 강석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네 부모는 내 친구였다. 그들을 사랑했어. 나도 슬프다.” “하. 그러셨어요?” “하지만.” 강석은 조용히 일어나 쏟아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네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구나. 나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나라에서 맺어준 짝도 거부했어.” “누가 날 키워달랬어요? 난 그냥… 삼촌이 필요했다고요. 찾아와줄 수 있었잖아요. 한 번 안아줄 수도 있었잖아요.” “한 번 안아주면 이만 갈 테냐?” 말문이 막힌 도현은 강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강석은 도현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책들을 여러 더미로 대강 쌓아두고 있었다. “나한테 뭐 맡겨 둔 것처럼 굴지 마라. 네가 좀 더 큰 뒤였다면 어른 대 어른으로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 이런 식으로 물건이나 부수는 어린애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도현은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되는 대로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책장과 테이블이 부서져 나갔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이걸 예상한 건 아니었다. 분명 삼촌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줄 알았다. 섭섭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이유를 듣게 될 줄 알았다. 그러면 한바탕 비난하고, 사과 받고, 용서하고, 이제 삼촌에게 의지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삼촌은 그를 그저 달갑잖은 응석받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자, 도현의 감정과 주먹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다 부쉈냐?” 여전히 씩씩거리는 도현에게 강석이 말했다. 문득 강석의 얼굴이 지치고 권태로운 노인처럼 보였다. 피로감이 가득한 눈은 퀭하고 입술은 말라 갈라져 있었다. 삼촌이 이렇게 늙었던가? “다 부쉈으면 이만 가라. 오늘은 용서해주마.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고요. 용서라고요.” 도현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강석의 말을 꾹꾹 눌러 되풀이했다. 손에서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삼촌 말대로 마지막이에요. 더는 찾아오지 않을게요. 나를 그렇게 거추장스러워하는지는 전혀 몰랐네요. 그렇게 비겁하고… 작은 인간인 줄 몰랐어요.” “좋을 대로 생각해라.” 도현은 그대로 뒤돌아서 문을 아무렇게나 벌컥 열곤 책방을 나섰다. 책방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흘끗 쳐다보곤, 그대로 걸어서 책방을 떠났다. - 책방을 나와 걷기 시작한 도현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복잡했다. 그간 도현이 살아오며 관찰하고 형성했던 세상이 완전히 해체되고 있었다. 사피엔스인 학교 친구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성가시기는 했다. 선생님들조차 신기한 눈빛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많이 달랐다. 게다가 도현은 그냥 다르게 생긴 외국인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외계인인 것도 아니었다. 네안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하지 않다가 그 존재가 알려진 지도 고작 300여 년밖에 안 된, 사피엔스의 친척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실험실에서 부활했고, 도현은 사피엔스와 같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네안 세대였다. 즉 그냥 낯선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전설 속 신비한 종족이 살아 돌아온 것과 같았다. 신기할 만도 하지. 신기한 게 당연해. 그들도 나름대로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어. 어쨌든 선생님들은 도현에게 잘 대해주려고 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개중에는 짖궂긴 하지만 그럭저럭 우정이라 할 만한 것이 생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른 반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사피들보다는 조금 더 쉽게 친해진 네안 친구도 있었다. 이제 도현에게 그 모든 것은 위험 요소였다. 가족. 가족처럼 보이던 사람. 진짜 가족과도 같던 사람. 모두 한 번에 도현의 곁을 떠났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기대가 배반당할 때 뭐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았다. ‘때로 혼자인 것 같고 외롭지만 그래도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도현은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자신을 바닥이 없는 천장에 매달아 둔 가느다란 낚싯줄로 보였다. 이렇게 매달려 있다가 낚싯줄이 다 끊어지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튼튼한 밧줄도 이렇게 순식간에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낚싯줄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였다. 밧줄이 끊어지고 어떻게 됐는지 봐. 이건 말하자면 1차 경고야. 그렇게 무너질 순 없지. 도현은 모든 줄을 스스로 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준비도 못한 채 줄이 끊어지는 걸 멍청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지. 먼저 대비하고 추락하는 편이 낫다. 추락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깟 낚싯줄에 의지할 게 아니라 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건 도현이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날지 못하게 방해하는 목줄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던 도현의 발걸음이 조금씩 단단해졌다. - 별안간 천애고아가 된 도현에게 네안 자립위원회인지 뭔지에서 어떻게 사정을 알고 얼마간 후원을 해 줬다. 처음 연락이 왔을 땐 안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냥 도현이 조건에 맞으니 위원회의 후원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며 다음 주에 입금될 거라고 심드렁하게 안내할 뿐이었다. 짧은 전화 통화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들어온 후원금은 아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학업을 마칠 정도는 됐다. 얼마 되지 않는 부모님의 유산은 고등학교 졸업 후를 위해 잠시 아껴둘 수 있었다. - 도현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 간밤에 긴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허둥지둥 일어나 교복을 입고 현관에 붙은 거울을 보고 섰다. 네안 체격에 딱 맞춘 교복은 약간 비쌌지만, 도현은 기꺼이 추가금을 지불하고 맞춤으로 구매했다. 헐렁한 빈틈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속으로는 다 큰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는지도. 사피엔스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더 크기도 한다던데, 어차피 네안은 보통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더 자라지 않았다. 도현이 진학한 고등학교로 가는 길에는 작은 문제가 있었다. 학교로 곧장 향하려면 강석의 책방 앞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입학 후 몇 주가 지났지만 도현은 길을 뱅뱅 돌아 등하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랬다간 확실하게 지각이었다. 거울 속 도현은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내가 피할 이유가 있나?’ ‘게다가 어차피 그 사람은 이렇게 일찍 출근하지 않아.’ 오늘은 그냥 가장 빠른 길로 등교하기로 결심한 도현은 현관문을 나섰다. 저 골목을 돌면 책방이 나타난다. 제발 문 닫혀 있어라. 골목을 돌자 정말 문이 닫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도현은 그대로 그 앞을 질러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셔터 뒤로 보이는 가게는 책방이 아니라 약국이었다. 도현은 늦은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찰나, 청소하러 나온 바로 옆 편의점 사장님이 도현을 알은체했다. “오, 도현이 아니냐.” “아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구나 도현아. 고등학생이야?” “네 올해 입학했어요. 그런데 여기 책방은 어디 갔어요?” “응? 작년에 저쪽 큰길 건너편으로 옮겼잖아? 삼촌이랑 연락 안 하니?” “아… 네 알겠습니다. 저 학교에 늦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조심해서 가라.” 갸우뚱하는 사장님을 두고 발걸음을 바삐 옮긴 도현은 다행히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수업에 집중이 안 되었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루 종일 정신이 딴데 팔려 하루를 허투루 보냈다. 하교 시간이 되자 도현은 가장 먼저 짐을 챙겨 교문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도현은 저쪽 큰길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다. 뭘 어쩌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강석의 소재가 바뀌었다는 점은 도현에게 변수였다. 어디로 옮겼는지 알아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양쪽을 조심스레 살피며 큰길 끝까지 걸어가자, 건너편에서 익숙한 간판을 발견했다. 지독한 양반. 그 낡은 간판을 그대로 들고 왔네. 전보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았다. 큰길가이긴 했지만 길 끝 모퉁이라 전보다 오히려 외진 느낌이었다. 그 뒤쪽으로는 그냥 큰 공장, 예전에 공장이었던 곳, 뭐 그런 낡은 건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저런데서 무슨 책을 팔겠다고. 삼촌도 참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비겁하고 얄팍한 인간. 책을 팔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그렇게 길 건너편 멀리서 책방을 노려보던 도현은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등하굣길은 짧아졌고, 다시 저쪽 큰길로 가는 일은 없었다. - 큰길 모퉁이에 주차한 도현은 혼자 차에서 내려 작고 낡은 가게 앞에 섰다. 짧게 숨을 한 번 내쉬고 문을 밀자 생각보다 너무 가볍게 열렸다. 좀 더 무거운 감각을 예상했던 도현은 살짝 휘청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책방에 들어서자 낡고 묵은 종이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쪽 공간은 겉에서 보기보다 더 좁았다. 그 전의 책방과 비슷한 것 같기도, 조금 더 좁은 것 같기도 했다. 대신 천장은 꽤 높은 편이었다. 4미터? 3미터는 넘어 보였다. 양쪽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은 천장까지 높이 뻗어 있었고, 튼튼한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넓은 책상 위에 책들이 쌓여 있었는데, 책상 가운데에 있는 책에는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얼추 분류는 되어 있었지만 찾는 책이 한눈에 들어올 성싶지는 않았다. 천장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싸구려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샹들리에는 그리 밝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스탠드 조명이 세워져 있어서 그런대로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침 아무도 없으니 얼른 도망갈까 생각하는 찰나에 카운터 뒤쪽 두꺼운 태피스트리 뒤에서 쯥, 하고 입맛을 다시며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태피스트리를 지나쳐 나타난 인물은 도현을 보고 눈이 조금 커졌다. “도현이냐.” 도현은 첫마디를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김도현 경위입니, 아니, 그, 음.” 강석은 도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 저예요.” “오랜만이구나.” “그렇네요.” “앉거라. 차 한 잔 주랴?” 강석이 가리킨 곳을 보자 오래된 안락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현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놓칠 뻔 했지만 애써 진정했다. “됐어요. 놀러 온 거 아니에요. 일하러 왔어요.” “그래, 경찰이 된 거냐?” “네. 실종된 사람이 여기 주소를 갖고 있었어요.” 도현은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하며 이미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 아시나요?” “모르겠구나.” 강석은 사진을 대충 보고 대답했다. 그 태도가 긴장 상태에 있던 도현을 툭 밀었다. 폭발할 준비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저건 거짓말이었다. 어라? 도현은 터지지 않았다. 이 젊은 경찰의 머리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시네요.” “무슨 소리냐?” “사진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잖아요. 뭘 숨기는 거죠?” “제대로 봤다. 숨기는 거 없어.” 블러핑하며 몰아세우기. 상당수의 거짓 증언은 이 단계에서 걸러낼 수 있다.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에 만난 건 언제고요?” “뭐 하는 게냐?” “일하고 있잖아요. 대답하세요.” “할 말 없다.” 잘 생각해야 한다. 도현의 직감은 저게 분명히 거짓말이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디서 그걸 느낀 거지? 어딜 공략해야 하지? 이런 건 이서가 더 잘하는데. 지금이라도 오라고 할까? 도현은 머리와 눈알을 열심히 굴렸다. 단서가 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정말 평범한 헌책방 그 자체였다. CCTV도 없었다. 네안의 시각대는 사피엔스와 약간 달라서, CCTV에서 쏘는 근적외선 조명이 조금 보였다. 눈부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거슬렸다. 네안의 눈에 걸리지 않도록 개선한 제품도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더 비쌌다. 그래서 네안이 혼자 하는 가게에 CCTV가 설치되지 않는 일은 흔했다. “저 경찰입니다. 이 정도 거짓말은 바로 눈치챌 수 있다고요.”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예나 지금이나 무책임한 소리만 늘어놓는 건 똑같네요.”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니까.” “하! 그러시겠죠. 책임이라는 게 뭔지 알기나 해요?” 이쯤에서 미끼를 던져보자. 물까? “그래도 최미현 씨한테 삼촌은 꽤나 중요한 사람인 것 같던데요.” 도현은 일부러 성을 틀리게 말하면서 강석의 눈치를 봤다.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냥 책방 주인이다. 이 책들이랑 같이 늙어갈 뿐이야. 누구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미현 씨가 가져온 책은? 무슨 책이었어요?” “가져온 거 없다.” “오긴 왔네요.” “아까부터 무슨 수작이냐?” “수작이라뇨?” “그거 아냐? 지금 네가 쓰는 수법들은, 사피엔스가 네안이 뭔지 알지도 못하던 시절부터 소설에서 줄창 써 먹던 거다. 이렇게 대답하마. 이미현이라는 여자는 여기 온 적 없고, 책 같은 거 가져온 적은 더더욱 없다.” “책방 주인답네요. 옛날 소설도 많이 읽었나 보죠?” “그런 편이다.” “그러니까 이미현 씨는 오긴 왔고, 삼촌은 이름도 제대로 알고 있고요.” 강석은 잠시 침묵했다. “쯥, 그래. 최미현이 아니라 이미현이지. 제법이구나.” “삼촌이 똑똑한 척하다가 헛발질할 줄 알았죠.” “잘했다. 그래, 이미현을 본 적 있다. 하지만 더 얘기하지 않겠다. 더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영장 가지고 오거라.” “실종 사건이에요. 납치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고요. 일 크게 만들지 마세요.”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그냥 책방 늙은이라면서요. 아는 얘기만 해 주면 되잖아요.” 강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발 물러섰다. “네 개인 번호를 남겨라. 경찰망을 경유하지 않는 걸로.”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건 사실이군요.” “이쪽도 다 사정이 있다. 본인 의사를 전달하게 하마.” “오늘 밤 내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정말로 영장 받아서 다시 올 거예요.” “연락 갈 거다.” “화상 통화로 걸라고 해요.” “알았다.” 연락처를 남긴 도현은 뭔지 모를 개운함을 느끼며 출입문으로 몸을 돌렸다. 바깥에 세워둔 도현의 차 안에서, 창피하게도 이서가 혼자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쟨 뭐냐?” “파트너예요.” “파트너. 그렇구나.” 도현은 공연히 뭔가 들킨 기분이 들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만 갈게요. 다시 오지 않게 연락처 확실히 전달해요.” “알았대도.” - 이서는 도현이 차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사장님이 맥주에 뭐 다른 술 섞어서 주신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신이 났지? “퇴근하자.” “살아 있다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해—” 도현은 이서의 노랫소리를 무시하고 시동을 걸었다. “근데 웃으면서 나왔네요? 들어갈 땐 도살장 끌려가는 표정이더니.” “내가?” 백미러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왜지? “뭐 대충 해결돼서 그런가 보지. 아마 내일이면 박무진 씨가 신고 취소할 거야.” “그래요? 이미현 씨 잘 있대요? 뭐야, 하루 종일 같이 공치고 마지막에 혼자서 해결하셨네?” “일은 원래 내가 다 하잖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둘 다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바로잡지 않았다. 이서는 깔깔대고 도현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 이서의 집 앞에 도착하자 도현의 전화가 울렸다. 도현은 목을 가다듬고 바르게 앉았다. 화면에는 이미현의 얼굴이 떠 있었다. 배경은 평범한 흰 벽지였다. “안녕하세요, 이미현 씨 본인이신가요?” “네.” “맞으시겠지만 간단한 절차 하나만 거치겠습니다.” 도현은 단말기 화면에서 [합성 감지] 버튼을 눌렀다. 진행률을 표시하는 게이지가 점점 차오르더니, 화면에 [합성된 디코이 영상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본인 확인됐습니다. 저는 김도현 경위라고 합니다. 이미현 씨 실종신고가 접수되어서 조사 중이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조용히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흘린 단서가 있었나 보네요.” “그러면 자발적으로 떠나신 겁니까?” “네.” “현재 안전한 상태이시고요?” “네.” “어디 계십니까?” “그건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박무진 씨께는 직접 연락해주세요.” “경위님이 그냥 말씀 전해주시면 안 되나요?” “말이야 전할 수 있겠죠. 하지만 박무진 씨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믿기나 할까요? 게다가 이미 접수된 실종 사건을 제가 그렇게 임의로 종결할 순 없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가까운 사람에게 설명도 없이 떠나놓고 아무 문제 없을 줄 아셨습니까?” 도현은 아무래도 박무진에게 감정 이입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무진이는… 괜찮을 거예요.” “빌어먹을, 그 사람은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정이 격해져 기억을 과장했다. 둘 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무진이 미현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뭐가 됐든, 최소한의 설명은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잖습니까. 직접 연락해 주세요.” 미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죠. 제가 연락할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미현이 한마디를 보탰다.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통화를 마친 도현은 잠시 핸들 한가운데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같이 멍하니 앉아 있던 이서가 불쑥 말했다. “이제 내려도 돼요?” “누가 붙잡았냐?” “통화하고 있었잖아요.” 그랬지. 일도 얼추 해결됐고 이제 집에 가면 된다. “근데” 이서가 안전벨트를 풀며 말을 이었다. “선배가 박무진 씨 편을 꽤 드네요.” “뭐가.” “아니면 말고요. 태워주셔서 고마워요. 내일 봐요!” 쫑알거리며 내린 이서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차를 돌려 도현도 집으로 향했다. 창문을 열어 서늘해진 밤공기를 맞으며 달렸다.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Planemo 행성질량을 지녔으나 어떤 항성도 공전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떠도는 천체.
EP #4.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강석은 그의 낡은 책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한데,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곤, 쯥, 입맛을 다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다 출근한 뒤라,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저 뒤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덩치가 좋은 청년 셋이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네안이었다. 청년들은 강석을 흘긋거리며 그의 옆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상당히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강석을 크게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석은 그들의 손목과 팔뚝에 있는 문신을 알아보았다. 호모 프리무스. 네안 우월주의 단체의 심볼이었다. 오래된 단체였다. 이런 비슷한 단체는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말이 우월주의지 실상 자기들끼리 술집에 모여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몇몇 혈기왕성하고 과격한 젊은 네안들은 이 이름을 달고 깡패 짓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청년 무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복면을 쓰고 순식간에 한 가게로 진입했다. 사피엔스 사장이 운영하는 잡화점이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게쪽으로 내달리려다가, 겨우 두 걸음 만에 마음을 고쳐먹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사장이 애원하는 소리와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등 뒤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보폭을 넓혀 계속해서 휘적휘적 걸었다. - 아까 그 청년들은 도현보단 좀 어렸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도현을 제대로 본 건 도현이 그보다도 훨씬 어렸을 때였다. 열댓살밖에 안 먹은 녀석이 그를 바라보던 죽일듯한 증오와 원망의 눈빛이 선연했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강석은 아직도 그 날을 반추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횡단보도 앞이었다. 지나는 차는 없었지만 빨간불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건널 뻔했다. 신호를 기다리다가, 발걸음을 옮겨 구석에 설치된 작은 흡연구역으로 항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순 없었을까? 도환이와 지현이를 설득했더라면? 아니면 내가 더 일찍 그들을 믿었다면? 생각은 늘 꼬리를 물었지만 해답을 찾은 적은 없었다. 신호가 돌아오기도 전에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곤, 쯥, 입맛을 다시며 다시 길을 나섰다. - 책방에 도착한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낡은 종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바깥의 화창한 햇살이 일직선으로 쏟아졌다. 햇빛줄기 사이로 묵은 종이 먼지들이 부유했다. 손으로 눈 앞의 먼지를 휘저으며 태피스트리로 구분된 뒤쪽 공간으로 들어서자 뒷문이 딸린 작은 방이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때 쉬며 책을 읽거나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강석이 의자를 들어내고 바닥의 낡은 카펫을 치우자 뚜껑문이 나타났다. 그는 거리낌없이 문을 열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입구는 어두웠지만, 구불구불한 통로를 잠시 지나자 갑자기 환한 조명이 밝혀진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터널에 차려진 일종의 사무실 같았다. 네안 몇 명이 각자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강석을 보자 알은체하며 일어났다. “오셨어요, 대장?” “애들 말이야, 이제 문신까지 하고 다니던데?” 강석은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 “아 그거요. 맞아요. 최근에 중간에서 붙은 어린애들이,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까부는 일이 좀 있어요.” “그걸 알고도 놔뒀어? 어떤 새끼들이 중간에서 장난질 하는거야?” “아시잖아요. 지금 같은 느슨한 조직망으론 하나하나 다 컨트롤할 수 없어요. 아직 제대로 움직이실 건 아니잖아요?” 강석이 쯥, 입맛을 다시자 그가 말을 이었다. “중간급들한테 좀 알아볼게요. 행동 조심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강석의 시선은 오래되어 헤진 심볼이 그려진 벽을 향했다. “저 빌어먹을 심볼을 몸에 새기기까지 할건 뭐야? 이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건지.” “애들은 사피랑 같이 자란 세대잖아요. 은근히 제딴에는 피해본게 좀 있겠죠.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오는 길에 보니까 문신한 애들이 가게 부수고 털어가더라고. 알아보고 넉넉히 보상해.” “아, 알겠습니다. 이건 어디 이름으로 보낼까요?” “알아서 적당히 만들어. 뭐 피해회복위원회라든지 그런걸로.” “네 그럴게요. 이거 이름 만드는 것도 은근히 재밌던데요.” 강석은 못마땅한 듯 한쪽 윗입술을 치켜올리고 사내를 바라봤다. “재밌냐? 재밌어?” “죄송해요 대장. 잘 처리하겠습니다.” 강석은 다시 헤진 심볼을 쳐다봤다.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 여기까지 읽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사실은 마감 날짜에 맞추어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쓴다는게, 그것도 정기적으로 기한을 맞춰서 쓴다는게 쉬운 일이 아님을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몸소 재차 느끼고 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음원이 발매되기 전에 마저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놀기에 참 좋지만 아프기에도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P #5. Every Version of Me
11/9 공개
이야기는 계속 공개됩니다
다섯 편의 단편과 다섯 곡의 음악은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모든 이야기는 누구나 볼 수 있으며,
후원금은 콘텐츠와 굿즈 제작에 사용됩니다.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에 함께해주세요.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후원
10/12 12:00 ~ 10/22 17:00
BOT Season2의 네 번째 싱글,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를
후원해주세요!
1. Basic
₩50,000
앨범아트 스티커, 키링, 포스터,
그리고 앨범 및 영상 크레딧
Thanks to에 후원자명 수록
2. Complete
₩100,000
Basic의 모든 구성
+ 싸인 폴라로이드, 티셔츠, 단편 책자
*티셔츠는 프리사이즈(L) 입니다.
*책자는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한편의 구성입니다.
NOW Bar Special
₩80,000
작품 속 인물들이 모이는 NOW Bar.
그 공간의 소품을 실제 굿즈로 옮겼습니다.
본 페이지의 상품 이미지는 실제 제작된 굿즈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연출했으며,
실제 제품과 색상·질감·비례 등에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후원은
10/12 (월) 정오에 오픈됩니다!
어쩌다보니 나쁜 사람이 돼버렸네
후원 신청
원하는 구성을 선택하고 후원 정보를 남겨주세요.
신청서를 제출하면 입금 안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후원 신청서 작성하기 ↓
제출 버튼을 누른 뒤 잠시 기다리시면
입금 안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